“너무도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그날 하루 종일 깊고 아프게 파고들었다. 나는 선한 사람이고 항상 옳은 일을 하려고 애썼다.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 그 누구보다 나는 종교적으로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반세기 전 한 젊은 아빠는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분노했다.
“그런데 어떻게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신이 존재한다면, 사랑과 용서는 고사하고 조금이라도 공정하다면, 신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When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라는 저서로 유명한 유대교 랍비, 해롤드 쿠쉬너 박사의 젊은 시절 절규이다. 그가 2주 전(28일) 88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저서와 신학적 통찰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 그의 절규를 똑같이 따라하는 사건이 터졌다. 텍사스, 달라스 북쪽지역 알렌에서 발생한 대량살상 총기난사 사건이다.
미국에서 총격사건은 놀랍지 않다. 2023년 들어 120여일 지난 5월초 이미 대량 총격사건(4명 이상 부상)은 200건을 넘겼다. 자고새면 총기폭력 사건이니 우리 대부분 많이 둔감해졌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다르다. 충격이 주는 통증이 날카롭고, 슬픔 섞인 아픔이 가슴을 묵직하게 누른다. 너무도 예쁜 한 가정의 이미지 때문이다. 한인들에게는 친척이나 친구 혹은 어느 지인의 자녀인 듯 친근한 인상의 한 가족이 무참하게 희생되었다. 이민,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총기 -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5월의 첫 토요일이었던 지난 6일 알렌 아웃렛은 붐볐다. 싱그러운 봄날, 샤핑도 하고 나들이도 할 겸 모여든 샤핑객이 많았다. 평범한 주말의 하루였어야 했을 그날, 오후 3시 36분을 기해 모든 게 바뀌었다. 신나치주의 미치광이가 나타나 AR-15 스타일 반자동 소총을 쏘아댔다. 3~4분 만에 8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상을 입으면서 샤핑몰은 참극의 현장이 되었다.
사망자 8명 가운데 3명이 한인가족이었다. 이민변호사인 남편(37), 치과의사인 아내(35) 그리고 3살 박이 아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6살짜리 아들은 엄마가 품에 안고 온몸으로 막은 덕분에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 어린아이가 엄마아빠 동생을 모두 잃은 충격을 어떻게 감당해낼지 상상조차 힘들다.
졸지에 성인 아들/딸 가족을 잃어버린 부모들은 또 어떠할까. 이민 1세로서 낯선 땅에서 일하랴 자녀들 교육시키랴 숨 가쁘게 살아왔을 그들에게 전문직 종사자로 자리 잡은 아들/딸은 큰 자랑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한인 배우자 만나 가정을 이루고 두 아들까지 두었으니 1세 부모들에게 그만한 기쁨은 없었을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 성취!”라고 흐뭇해했을 만하다. 그런데 그 복된 이민의 삶에 느닷없는 총탄이 비극을 몰고 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내가 뭘 그리 잘못 했는가 … 답 없는 질문들로 고통스럽고 혼란스런 나날이 이어질 것이다.
쿠쉬너 박사가 혼란에 빠졌던 날은 1966년 11월 19일이었다. 둘째로 딸이 태어나서 기뻤던 그날, 소아과의사가 아들에 대한 대단히 나쁜 소식을 전했다. 당시 3살이던 아들이 선천성 이상 조로증에 걸렸다고 했다. 아이가 자라기도 전에 늙어서 일찍 죽는다는 것이었다. 젊은 랍비에게 그것은 잔인한 형벌이었다. 돈독한 신앙심으로 평생을 신의 종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선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왜 그런 비극이 닥치는지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노, 배신감, 혼란이 밀려들었다.
아들은 10살이 되면서 60대 노인의 몸이 되고, 13살이 되면서 호흡도 힘겨워 했다. 그리고는 14살 생일 이틀 후 체중 25파운드의 작은 몸으로 엄마 품에 안겨 숨졌다. 비통함과 좌절, 격분에 휩싸여 18개월을 보낸 어느 날 그는 책상 앞에 앉았다. 오래도록 그를 괴롭혀 온 질문, “왜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라는 책이다.
그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내린 신학적 결론은 이렇다.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첫째 자연법칙에 개입하지 않고, 둘째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용함으로써 신은 스스로의 권능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유전적 우연으로 몹쓸 병에 걸리거나, 하필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다가 악의에 찬 미치광이의 총탄에 맞는 등의 불행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행이 죄의 대가도 아니고, 시련을 통해 단련시키려는 신의 계획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 나쁜 일을 당한 선한 사람이 용기를 내서 다시 살아가도록 붙들어주는 데 있어서 신의 사랑은 무한하다고 쿠쉬너는 말한다.
인간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산다. 선한 이들이 총에 맞아 죽는 게 안타까워 신이 총탄을 막아주거나, 도처에 널린 총을 한순간에 없애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전쟁터도 아닌데 총으로 연간 수만명(2021년 기준 피살 2만1,000명, 자살 2만6,000명)이 죽고, 3억5,200만~4억3,400만 정의 총기가 나도는 대단히 미국적이고 기이한 현실을 바꿔야 하는 건 사람들이다. 총기 옹호 정치인들을 솎아내고 법을 바꿔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더 많은 선한 이들에게 나쁜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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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