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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분노·좌절감… 불안과 다양한 사회문제를 풍자’

2023-05-12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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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넷플릭스 10부작 드라마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스티븐 연·앨리 웡·이성진 인터뷰

‘현대인들의 분노·좌절감… 불안과 다양한 사회문제를 풍자’

넷플릭스 10부작 드라마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스티븐 연·앨리 웡·이성진 인터뷰

‘현대인들의 분노·좌절감… 불안과 다양한 사회문제를 풍자’

넷플릭스 10부작 드라마 시리즈 ‘성난 사람들’의 한장면.


넷플릭스가 만든 10부작 드라마 시리즈‘성난 사람들’(영어 명 Beef)은 난폭운전(로드 레이지·Road Rage)사건에 관련된 사업이 신통치 않은 도급업자 대니 조(스티븐 연)와 성공은 했으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여 사업가 에이미 라우(앨리 웡)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겪는 분노와 갈등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이요 가족과 이웃까지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연을 엮은 다크 코미디 드라마다. 한국계인 이성진이 각본을 쓰고 총 제작을 겸한 시리즈에는 스티븐 연(‘버닝’ ‘미나리’) 외에도 데이빗 최, 조셉 리, 영 마지노, 애슐리 박 및 저스틴 민 등 한국계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 난폭운전 사건으로 인해 불화를 반복하는 두 남녀를 통해 현대인들의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불안 및 다양한 사회문제를 풍자한‘비프‘는 이 곳에서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비프‘는 불평과 논쟁을 뜻하는 속어다. 스티븐 연(39)과 코미디언인 앨리 웡(40) 그리고 이 성진이 영상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스티븐 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분하게 앨리 웡은 코미디언답게 명랑하게 그리고 이 성진은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 성진, 앨리 웡, 스티븐 연)

-각본을 처음 읽고 느낀 반응은 어떤 것이었는가.

*“처음에 서니(성진의 애칭)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내게 난폭운전 사건에 관한 아이디어가 있어’라고 말했을 때만해도 난 그저 ‘그래, 그거야’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각본을 받아 읽으면서 나를 흥분하게 만든 것은 대사였다. 대사가 너무나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쉬우면서도 고품질의 대사였는데 그 것을 읽으면서 ‘야, 이거 재미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스티븐)


*서니가 말한 난폭운전 사건에 관한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그 내용이 겁이 나면서도 날 흥분시켰다. 각본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그 내용이 매우 긴장감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새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는데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역을 해본 적이 없다.“(앨리)

-서니, 당신이 실제로 경험한 난폭운전 사건에서 내용을 착상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어느 날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는데도 내가 빨리 운전하지 않자 흰색 BMW가 경적을 울리면서 내게 욕설을 퍼붓고는 쏜살 같이 내뺐다. 난 이에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내가 널 따라 갈거야’리면서 그 차 뒤를 따라 고속도로를 달렸다. BMW 운전자는 내가 자기를 추적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그 길이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었을 뿐이다. 이 일이 있은 후 1년 반이 지나 작품을 쓰기 시작했으니 난폭운전 사건에 감사해야겠다. 그러나 난폭운전을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당신 역이 한 일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가.

“내 자신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것과 정면 대결한 것이다. 그 것은 내가 어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유리문을 들어 받은 것과도 같은 일이다.”

-앨리, 스티븐을 작품에 나오기 전부터 잘 알았는지. 오래 동안 함께 작품을 찍으면서 둘이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가.

“작품을 찍기 전만해도 우린 서로를 그렇게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리즈를 찍고 나서 나는 그와 내가 우정으로 맺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 여름에 내가 내 아이들을 데리고 스티븐의 집을 찾아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이 좋은 예다. 이 쇼로부터 내가 얻은 가장 좋은 것은 스티븐과 서니를 비롯해 작품에 나온 사람들과 맺게 된 우정이다.”


-스티븐, 당신은 지금까지 진지한 극적인 역을 많이 맡아 했는데 이 번에 희극적인 역을 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

“희한하게도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니 역을 우습게 한다는 것은 그의 삶의 불운한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시에 대니의 불운한 드라마 안으로 들어갔다가 동시에 거기서 빠져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매일 같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도전이었다.”

-서니, 작품을 쓰면서 한국 문화와 한국의 정체성을 뚜렷이 나타내려고 신경을 썼는가.

“작품에 대해 스티븐을 비롯해 사람들과 논의를 했지만 특별히 그 것들을 부각시키려고 하진 않았다. 스티븐과 내가 한국교회에 나가며 컸듯이 대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그를 한국교회에 나가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스티븐과 나는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들이 경험한 기분과 분위기에 신경을 썼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 작품을 쓰면서 나는 작중 인물들을 실제처럼 느끼도록 하려고 애를 썼지만 특별히 한국 정체성을 부각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 것들은 다만 작품의 사실성과 분위기에 어울리게 될 경우에 자연스럽게 첨가되었을 뿐이다.”

-스티븐, 시리즈에 당신이 교회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영화나 TV작품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부른 소감은 어땠는지.

“사실 그렇게 두렵진 않았다.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두 멋있었다. 분위기가 좋아 노래 부르기도 어렵지 않았는데 특별히 한국교회 장면은 그저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앉아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해 노래 부르기도 편안했다. 마치 내 집에 있는 듯한 안전한 분위기였다.”

-서니, 10편의 에피소드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제 7편의 에피소드의 장면이다. 에이미의 집에서 열린 저녁 파티에서 에이미와 대니가 벌이는 논쟁 장면이다. 난 스티븐과 앨리가 보여준 연기를 너무나 사랑한다. 아주 최소한의 연기이지만 강력 하면서도 실존적이어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장면은 전체 드라마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것이다.”

-서니, 드라마에 대니가 부모를 위해 산 전기밥솥의 버튼을 누르면 켈리 클락슨의 노래 ‘신스 유브 빈 곤’이 나오는데 어디서 그런 착상을 했는가.

“난 그저 켈리 클락슨의 그 노래를 좋아할 뿐이다. 그런데 어떤 전기밥솥은 진짜로 노래가 나와 난 그저 그 것을 내 아이디어로 사용했을 뿐이다.”

-앨리, 작품의 많은 장면들 중에서 특별히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스티븐과 함께 찍은 촬영 첫 날의 장면이다. 대니가 우리 집 화장실 사방에 오줌을 싸갈긴 것을 발견한 내가 그를 뒤쫓아 가는 장면이다. 날이 다 저물어가는 때여서 빨리 촬영을 끝내야 했다. 그리고 로케이션 임대료도 비쌌다. 그래서 해가 지기 전에 촬영을 끝내려고 맹렬히 달렸다. 뛰고 나서 스티븐과 나는 박장대소했다. 아주 재미있었다. 그 같은 분위기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드라마는 대니와 에이미가 적이라기보다 관계를 맺는 두 사람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스티븐, 당신이 특별히 기억하는 장면은 무엇인가.

“시리즈를 상징하는 부분이 많은 에피소드 제10편이다. 내가 특히 이 에피소드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부분이 풀어 보여주기에 즐거웠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나의 자연스럽고 취약한 부분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앨리, 연기를 하기 전에 준비를 많이 했는지.

“우린 시간이 별로 많이 없었다. 대부분 그저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연기를 해야 했다.”

-앨리, 에이미의 집은 밖에서 보면 아름답고 멋있지만 안에서 보면 감옥과도같은데.

“그렇다. 그 것은 에이미가 느끼는 것과 직면해야 하는 것과의 거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스티븐, 대니의 나쁜 결정은 사실 좋은 의도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그는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그 것이 제대로 되질 않는데 그런 좌절감을 당신도 가져 봤는가.

“그렇다. 그런 대니를 생각하면 나의 젊은 시절이 기억난다. 나도 그런 처지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나도 대니 같이 이민자의 첫 아들로 자라 내 주위 환경을 내가 뜻하는 대로 조정해야 할 필요가 절실했다. 나는 대니에게서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을 본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가 보는 세상의 방법들에 눌려 살고 있다. 참으로 좌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이런 처지에서 문을 열고 나와야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은 그가 자신을 인질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대니를 연기하는 것은 내가 젊었을 때 나의 거울로 자신의 반영을 볼 수 없었던 기억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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