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이름은 진분수

2023-05-08 (월) 김범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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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일어날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자기의 분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 국어를 잘해야 하고, 산수를 잘해야 한다고 한다. 국어를 잘하려면 주제파악을 해야 하고, 산수를 잘하려면 분수를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분수는 쉽게 보이지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분수는 진분수가 있고, 가분수가 있다.

진분수는 분모가 크고 분자가 작은 것이고, 가분수는 분모는 작은데 분자가 클 때 가분수라고 한다. 인생으로 표현하면 어떤 것도 잘 감당하는 인생이 진분수이고, 늘 어렵고 힘들고 비틀거리는 인생이 가분수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살면서 당하는 상처와 실망감은 진분수일 때보다는 가분수 일 때가 많다. 생각보다 현실이 잘 조화가 되지 않을 때, 기대가 너무 큰데 성과는 좋지 않을 때, 마음만큼 몸이 받쳐주지 못할 때 삶이 힘들게 된다. 곧 진분수는 분모가 크면 분자를 감당할 수 있어 가볍고 쉽고 그렇게 힘들지 않다. 바탕과 기본과 생각과 지식과 경험과 관리와 마음과 뜻이 튼튼하면 어떤 상황과 현실과 실천과 계산과 환경을 이겨낼 수 있다.

돈 없으면 구태여 남의 양복을 빌려서 멋있게 차려 입고 밖에 나가서 음식을 먹고 음식 낼 돈이 없어서 쩔쩔매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옛날 선비들은 설령 고기를 먹지 않았어도 고기를 먹은 것처럼 이를 쑤시는 모습까지 보이는 그런 자기관리를 했다. 그것이 다 옳다 말할 수는 없지만 없기 때문에 먹고 싶어서 남의 집에 들어가 훔치거나 빼앗지도 않을 뿐더러 먹지 못해서 마음에 아쉬움이 오래 남게 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진분수의 삶이다. 살면서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없고, 생각대로 척척 이루어지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없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우리 눈에 드러나게 보이는 화려하고 위대하게 보이는 사람의 인생도 다 이상과 현실이 다 맞게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미국 이민자로서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남에게 눈을 속여가면서 거짓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못하는 사람이 잘한다고 말할 수 없고,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처럼 위장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경험하며 살고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 그 자체가 허영이 아닌 실체인 것이다.

때로는 우리 마음에 유혹이 오고, 혼란이 올 때가 있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많이 누리고 싶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고 싶을 때가 있다. 목적과 희망과 꿈이라는 차원에서는 이해할 면도 있지만 이것이 너무 지나치면 감당하기 힘들어 내려놓아야만 하는 가분수가 된다.

가분수는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에 이고 갈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된다. 성경은 말씀한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로마서12:3)

짧지만 긴 인생 가운데 하고 싶고, 가고 싶고, 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너무 많으면 가분수가 된다. 작은 것이라도 지금 내가 하고 있고,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으로 가볍게 산다면 그 인생은 진분수의 인생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진분수이다.

<김범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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