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세의 남자가 기억력 감퇴로 필자를 찾아왔다. 환자의 기억력은 내원 약 6개월 전부터 떨어지기 시작하였다고한다. 환자는 평소에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주소 등을 잘 기억해 내기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환자와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은 환자가 며칠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해 내지 못하여 같은 질문을 자주 반복한다고도 하였다. 환자는 어떤 일을 해놓고도 잊어버려 다시 한 적이 많고,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몰라 찾아 헤맨 적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환자의 기억력 문제 외에 필자의 눈에 띈 사실이 있었다. 바로 환자의 걸음걸이였다. 환자의 걸음걸이는 매우 불안하여 중심이 자주 한쪽으로 쏠리곤 하였다.
환자는 인지능력 검사를 받았으며, 그 결과 상 단기 기억 능력의 감소와 함께 시공간 지각의 장애 소견이 보였다. 또한 신경학적 검사에서 파킨슨병을 시사하는 소견인 팔다리의 경직과 손 떨림 증상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진찰 소견으로 환자에게 안구 움직임의 이상 소견, 즉 환자의 경우 머리 위로 눈을 치켜 뜨는 동작을 할 수 없었다. 계속하여 환자는 여러가지 신경학적인 검사들을 받았는데, 환자의 진단은 인지능력 저하와 운동능력 장애를 동시에 일으킬 수 있는 치매증후군의 하나인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으로 진단할 수 있었다.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은 퇴행성 뇌 질환의 하나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파킨슨병으로 진단된 사람들 가운데 약 10%에 있어서는 후에 파킨슨병이 아닌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이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최근 발생 빈도가 증가 추세에 있는 신경 질환이다. 현재까지 두가지 형태의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이 알려져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파킨슨병 증상과 자율신경계 이상 증상을 보이는 형태와 다른 한 가지는 주로 소뇌 및 운동 신경계의 이상을 보이는 경우다.
2007년 발표된 요시다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노화 과정에서 세포에 축적된 알파 시누클레인이라는 이상 단백질이 신경세포를 빨리 죽게 함으로써 이와 같은 퇴행성 신경계 질환이 발생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화 과정에서 누구나가 다 겪게 되는 기억력 감퇴 및 운동 능력의 소실은 정상적인 노화과정의 일부인 경우가 물론 대다수이겠지만, 만일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과 같은 병적인 퇴행성 신경계 질환의 초기 증상이라면 이에 대한 조기의 정확한 진단만이 최선의 치료와 관리를 통해 노년기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문의 (571)620-7159
<
임정국 / 신경내과 전문의 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