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토마스 엘리엇(Tomas S.Eliot)의 장편시 ‘황무지’에 있는 시다. 4월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기 때문에 신선한 무지개 때깔이 무뎌진 제주도 은갈치처럼 느껴진다.
겨울의 긴 추위를 지나 꽃샘추위와 함께 특별함을 선물해 주는 4월이다. 산천이 자연의 조화로 아름다운 연초록빛으로 물들고 화려한 자연의 변신이 이루어지는 봄이 되면 여러가지 꽃들이 봄을 봄답게 해준다. 산과 들에서 부르는 봄의 소리가 귓속을 맴도는 것 같다. 삼라만상이 약동(躍動)하는 시즌에 집안에 가만히 있는다는 건 4월에 대한 배신이다. 4월의 꽃들을 보면서 이해인 수녀 시인의 ‘4월의 시’를 감상하면 더욱 멋진 봄맞이가 될 것 같다.
“꽃무더기 세상을 삽니다/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자기가 제일인양 활짝들 피었답니다./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감사한 마음이고/고운 향기 느낄수 있어 감격이며/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이하생략)”
4월이 가장 잔인한 달만은 아니다. 세상 만물이 소생하고 파란 싹을 틔우고 오만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 피어나는 4월은 진짜 봄이 시작되는 희망의 달이요 약동의 달이다. 해마다 봄은 자객처럼 소리없이 조용히 찾아온다. 봄을 피부로 알리는 전령사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핀 집뜰의 매화꽃과 양지바른 텃밭에서 싱그러운 자태를 풍기며 흙을 비집고 돋아나는 머위의 파란 새싹들이다.
4월의 시작은 꽃의 물결을 몰고 서서히 찾아온다. 중순으로 접어들면 햇님이 활화산에서 나온 것처럼 뜨거운 정열을 퍼붓기 시작한다. 따스한 햇살이라는 젖을 먹고 산과 들판에는 봄풀들이 자라나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며 농작물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햇살이 산과 들을 애무하는 계절에 약속이나 한 듯, 언 땅에서 생명을 약동하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당귀가 가느다란 고개를 숙이고 다소 고이 인사하면서 봄을 알린다. 파란 잎사귀를 삐죽이 내밀고 나오는 산마늘이 강한 냄새를 풍기면서 봄인사를 한다. 쑥과 산미나리가 줄지어 서서 손짓하며 봄마중을 한다.
꽃이 한창 펼칠 무렵에 불청객인 꽃샘추위가 들이닥칠 때도 있다. 비바람까지 함께 찾아와 시샘을 부린다. 어떤 해는 꽃이 금방 피었다가 쓸려가듯이 나뭇가지만 휑하니 남을 때도 있다. 4월은 더는 잔인하지 않다. 불길함의 상징이 아니다. 아팠던 상처를 보듬고 우리에게 다가올 희망찬 내일을 향해 푸르른 산과 들판으로 안내한다. 봄이 사뿐사뿐 문 앞에 있는 4월은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로워 사람의 마음을 즐겁고 윤택하게 해준다. 더불어 행복감도 준다. 감성이 무딘 사람도 아름다운 꽃을 보면 가던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화사한 꽃에 매료되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다.
4월을 노래하는 여인은 꽃을 사랑하고, 텃밭에서 땀 흘리는 농부는 눈빛, 손짓과 발자국 소리로 작물을 사랑하고 대화한다. 짧은 순간을 살더라도 향기를 잃지 않는 꽃처럼 싱그러운 봄날 따뜻한 봄기운 받아 삶의 활력소가 되고 희망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4월이면 좋겠다.
박목월 시인은 ‘사월의 노래’에서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고, 긴 사연의 편질 쓰겠다”고 했다. 4월은 결코 잔인한 달이 아니다. 봄의 정기를 받아 활기차게 꿈틀거리는 생동과 약동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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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