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총기관련 사망 및 부상자수를 공개적으로 집계하는 총기폭력 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최소 146건에 이르며, 이번 달에만 최소 15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내슈빌의 사립초등학교에서, 10일 캔터키 주 루이빌 은행에서의 총기 난사 사건 등이 일어날 때마다 더 적극적인 총기 규제 법안 통과가 대두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다.
사람들은 뮤직 콘서트에서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댄스홀에 춤추러 갔다가, 식품점에 빵과 우유를 사러 갔다가, 학교에 갔다가, 같은 직장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죽고 있다.
이 살벌한 세상에서 우리가 기댈 곳은 어디일까? 사람이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때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미담(美談)이 필요한 세상이다. 미담은 나를 변화시키고 이웃을, 나라를, 세계를 변화시킨다. 흉흉한 총기난사 소식이 들려와도 미담은 우리가 사는 곳이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고 믿게 한다.
그런데 요즘, 서울이나 뉴욕이나 왜 이리 불협화음이 난무할 까. 요즘 세태를 보면 윤흥길 소설 ‘완장’이 떠오른다.
최사장은 이곡리의 판금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감시를 종술에게 맡긴다. 동네 건달 종술은 완장을 차고 서푼어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을 찬 종술은 낚시하러 온 남녀에게 기합을 주고 고기 잡던 동창 부자를 폭행한다. 종술의 어머니는 완장을 보며 일제시대의 헌병과 6.25때의 붉은 완장을 떠올리며 몸서리쳐한다. 지나친 권력 흉내는 감시원 자리에서 쫓겨나게 만들고 결국 완장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부월이의 말에 완장을 저수지에 벗어 던지고 멀리 떠난다.
이러한 줄거리의 ‘완장’은 작던 크던 권력을 쥐면 업무 외적인 부분까지 사용하고 싶어지는 인간의 속물근성을 풍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되면서 한인사회도 기지개를 펴고 수많은 단체들이 다양한 활동을 개시했다. 그런데 의외로 보이지 않는 완장에 집착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현 회장, 전 회장, 의장, 고문, 대표, 임원, 위원, 이사장, 이사 등등 사람이 만든 직책이 영원한 것은 없다. 자영업자나 회사 창업자라도 사망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하물며 2년, 길어야 4~5년의 직함이 뭐 그리 대단한가.
그 자리에 있든 없든 마음에서 내려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허울뿐인 자리를 놓고 아전투구하지 말자. 뉴욕·뉴저지 50만 뉴욕한인들은 오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치고 피곤하다. 더 이상 스트레스 주지 말자.
올초 한 미담이 기억난다. 메릴랜드 주 월마트에서 82세에도 불구, 풀타임으로 일하던 할아버지 계산원, 노후자금이 없어서 은퇴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 한 고객이 온라인 모금사이트 ‘고펀드미’에 매리언을 돕자는 글과 영상을 올렸다, 며칠 만에 10만 8,682달러의 성금이 답지, 백발의 한 노인이 은퇴하도록 따뜻한 인정을 베푼 이들, 아름다운 사연이었다.
또 지난 부활절, 뉴저지 한 교회에 갔더니 입구에 야채와 과일이 담긴 큰 박스가 놓여있는데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했다. 댄스강사였다가 은퇴 후 농사를 짓고 있는 할머니가 가져다 놓은 것이었는데 사연인즉, 7년 전에 웨딩댄스를 가르쳐 준 히스패닉 제자가 수시로 농산물을 선물한다는 것이었다.
농산물 딜리버리 트럭운전사인 그는 7년이 지났어도 웨딩날 멋지게 춤추게 해 준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는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종 청년의 미담이 흐뭇했다. 덕분에 우리집 식탁은 일주일간 브로콜리, 샐러리, 양상치, 순무, 키위 등으로 풍성했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먹고 살기가 힘들다. 이런 미담이라도 자주 들려서 살맛나게 해주었으면 한다. 세상이 달라지려면 우리 모두 선한 일에 동참해야 한다. 이기심, 욕심과 고집을 버리고 이타적인 협력과 배려심을 가져야 한다. 내 마음 속의 선한 천사가 내 마음속의 악한 악마를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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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