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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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호스트를 보는 미국 아줌마의 시선

2023-04-10 (월)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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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쇼호스트의 막말이 이슈가 되어 이역만리 미국에까지 날아와, 그녀가 과연 누구인지 궁금증이 유발되어 인터넷을 찾아보게 만들었다. 막말의 수준이 그저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말하고, 호통을 친다거나 마음에 거슬리게 하는 수준이라면 이렇게까지 이슈가 되지 않았을 터인데 무슨 일일까?

쇼호스트는 하나의 제품을 대중에게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관건이다. 쇼호스트의 말 한마디에 상품의 가치가 올라가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기에 기업에서는 누가 쇼호스트로 적합한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쇼호스트의 몸값은 잘 나간다는 연예인 뺨치는 수준이라 한다. 지금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그 호스트의 연봉이 40억이라는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쇼호스트가 화장품을 파는 시간대에 조기에 완판되는 골든벨을 울렸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시간을 다 채우지 않은 채 판매가 완료되었지만, 판매를 위한 배정된 시간까지 줄일 수는 없었나 보다. 이 호스트는 남은 시간을 자기가 메워야 하는 시간이 싫었는지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순간적으로 열여덟이라는 욕을 흘리다시피 했는데 그 뒤로 두어 번 연속으로 욕을 했고 마지막엔 정말 또렷이 **라고 말했고 내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상대 호스트에게 징징거리며 불평을 하는 수준을 넘어 욕을 하며 불만을 소비자 앞에서 한다는 건 어린아이라도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한마디로 방송사고였다.


물론 쇼호스트의 인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는 없는 일이다. 전에도 두어 차례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지만 무마시킨 과거를 탓할 수는 없고 대중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감정에 비속어가 섞여 나올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홈쇼핑 채널도 예능으로 봐달라고 한 것처럼 상품을 파는 자리를 조금은 느슨하게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살려 좀 더 많은 상품을 팔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에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섞는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때와 장소를 가릴 수 있는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하고 대중을 상대로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지성인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듯 말이다.

이런 사고가 발생한 홈쇼핑 채널에서는 대단한 결정을 내린 상태다. 영구퇴출이라는 카드로 회사에서 제일 잘 나가는 호스트를 한방에 버린다는 건 그만큼 그녀로 인한 소비자의 탈퇴를 막고자 하는 대단한 결단으로 보인다. 아마도 한동안 그녀는 다른 어떤 홈쇼핑 채널에서도 기피 1인자가 될 듯하다. 나 또한,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바이다. 비속어는 말실수가 아니다. 비속어를 대중 앞에서 사용했고 즉시 욕설을 한 자신을 인지하지도 못해 댓글로 자신을 옹호하며 일반인과 설전을 벌이고 몇 번이고 자신의 영상을 돌려본 후에야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했다면 그건 일상생활 속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쓴다는 확증이다.

안다. 사람은 살면서 숱한 말실수를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50살이 넘어도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나의 말이 전파를 타고 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말로 상대에게는 오해되는 말이 되어 서로가 얼굴 붉히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는 지성인을 운운하지만, 댕댕이가 실수를 하면 이성을 잃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막말을 하는 나 자신을 보며 한참 어이없어한 적도 있다. 어디 50세뿐이겠는가? 인간은 70, 80세 그리고 죽음에 임박했다 해도 말로 자신 주변의 사람들과 정다움을 나누기도 하지만, 때론 섭섭함으로 가슴에 상처가 나기도 해서 말의 위력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머릿속에 맴도는 목소리를 여과 없이 그대로 마구 내뱉으며 혼잣말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정신이상자라고 말한다.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있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퍼트리면 우리는 사기꾼이라고 말한다. 또한, 말끝마다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 위아래 없이 버릇없게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심하면 천박한 사람이라며 가까이 두기를 꺼려한다. 말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인간이 표출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입으로 내뱉는 ‘말’이지 싶다.

손으로 쓸 수 있는 ‘글'은 열 번이고 백번이고 고칠 수 있고, 다듬고 다듬으며 나를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재탄생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한마디로 어른스러운 무기다. 하지만 ‘말'은 머리에서 생각하기도 전에 순간적이고 습관적으로 노출되어 버리는 어린아이 같은 무기라고 말할 수 있다. 평소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이 항상 정돈되고 가지런하게 놓여 있을 때 갑작스러운 말에도 흔들림이 없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목소리가 말로 나오기까지의 여정은 오로지 나만의 길이다. 나의 입이 진정한 나의 무기임을 인지하고 조심하자. 우리도 언젠가 한방에 그녀처럼 날아갈지도 모르니 말이다.

<김지나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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