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폭력과 범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진짜 큰 문제”

2023-04-07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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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파나마 영화 ‘플라자 카테드랄’의 애브너 베나임 감독

“폭력과 범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진짜 큰 문제”

파나마 영화 ‘플라자 카테드랄’의 애브너 베나임 감독

“폭력과 범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진짜 큰 문제”

영화 ‘플라자 카테드랄’의 한 장면.



-영화 끝에 치프 역의 페르난도가 영화가 개봉되기 얼마 전 실제로 갱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자막이 나오는데 그에 대해 말해 달라.

“그렇다. 참으로 비극이다. 페르난도는 연기 경력이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아주 연기를 잘했다. 그리고 매우 총명한 아이로 춤을 잘 추는 댄서이기도 했다. 그 아이는 영화와 같은 환경에서 살았는데 코비드 전염병이 돌면서 다니던 학교를 여덟 달이나 못가고 집에서 마저 쫓겨나 거리의 아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 영화 개봉 4개월 전쯤에 그런 비극을 맞았다.”


-영화는 일부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서 범람하는 폭력에 관한 강력한 사회적 의미도 지니고 있는데 파나마의 폭력 상황은 어떤가.

“파나마는 작은 나라여서 브라질이나 멕시코 같은 큰 나라의 폭력 사태보다는 덜하지만 우리나라도 그들 나라와 비슷한 폭력과 빈부 차이와 인종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파나마는 소국이어서 이런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회적 문제란 그렇게 쉽게 풀어지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페르난도가 사는 달동네에 찾아가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만났는데 그들이 들려주는 폭력과 범죄의 얘기를 듣고 큰 충격에 빠졌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것들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회 전체가 이런 사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 것이야말로 진짜로 큰 문제다. 파나마에선 정규적으로 아이들이 피살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신은 기록영화를 여러 편 감독했는데 그 같은 경력이 이 영화를 만드는데 어떤 영향이라도 미쳤는가.

“모든 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장소도 실제 장소이고 얘기도 내가 아는 곳에서 있었던 것이다. 배우들도 알리스 역의 살라스와 알리스 남편 역의 마놀로 카르도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다 비 배우들이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에서처럼 비 배우들을 쓰기를 겁내지 않는다. 파나마는 영화 역사가 짧기 때문에 아직 재능이 연마되지 않은 생생한 연기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난 기록영화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일단 재능을 연마하면 얼마든지 카메라 앞에 설 수가 있다.그런 사람들은 캐스팅회사에선 찾아보기가 힘들다.”

-알리시아와 치프의 만남은 신분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만남인데 당신도 실제로 이렇게 당신과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을 만난 경험이라도 있는지.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것이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난 어려서부터 나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들 간에 놓인 장애를 잘 알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작은 보석상을 경영해 우리는 차도 있고 또 좋은 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집을 나와 파나마시티를 걷다보면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이 때부터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문제는 나와 그런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다. 이 장벽을 깨어버린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이 영화도 보다 사실적인 것이라면 알리시아는 도움을 요청하는 치프에게 돈 몇 푼을 쥐어주고 아파트 밖으로 내보냈을 것이다. 알리시아가 치프를 자기 아파트로 데리고 들어가 돌본다는 것은 가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영화에서 상징적으로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 간을 가로 막고 있는 장벽을 깨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알리시아처럼 광장에 있는 아파트에서 2년간 산 적이 있다. 나도 알리시아처럼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우곤 했는데 그 때마다 매번 아파트 앞의 길에서 차를 닦아주는 40세쯤 되는 남자와 얘기를 나누곤 했다. 좋은 아파트에 사는 내가 길에서 차를 닦아주는 남자와 얘기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상과 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신분과 경제적 차이는 파나마가 당면한 큰 문제로 나는 언제나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는 있지만 둘 사이를 가로막은 장애물을 뛰어넘기는 아주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알리시아로 하여금 문을 열고 치프를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치프 역의 페르난도를 어떻게 찾았는가.


“우선 몸이 13세나 14세의 아이와 같은 것이야 했고 또 아직 소년이면서 자기가 어른인줄로 생각하는 소년을 찾았다. 그리고 위험성을 지녔으면서도 소년처럼 부드러운 면을 가졌고 또 카리스마가 있고 총명하고 빠르고 자기 몸동작을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페르난도가 이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우리는 페르난도 역을 고르기 위해 영화에 나오는 달동네를 찾아가 배우 모집 팻말을 내걸고 있었더니 페르난도가 혼자 나타나 ‘나 영화에 나오고 싶다’라고 말했다. 난 그 순간 페르난도가 치프 역에 맞는다고 마음속으로 점을 찍어 두었다. 그리곤 테스트용 필름을 찍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제작에 들어 갈 때 나는 과연 페르난도가 정말로 해낼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그 또래의 아이 두 명을 더 골라 함께 연기를 시켰다. 두 아이들은 200명의 지원자 중에서 골랐는데 영화에 단역으로 나온다. 그랬더니 페르난도가 날 찾아와 ‘경쟁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면서도 ‘그래도 해보겠다’라고 말했다. 그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난 ‘네가 치프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 아이가 지금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 앞으로 대성할 아이였는데 참으로 끔찍한 비극이다.”

-알리시아가 여섯 살 난 아들을 잃은 것은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비극중의 하나인데 당신은 그런 알리시아로 하여금 어떻게 다시 삶과 희망을 찾게 해주고 싶었는가.

“내가 알리시아로 하여금 아들을 잃게 만든 것은 그를 완전한 상실감에 처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알리시아는 삶과의 재 연결을 시도하나 그 것이 되질 않는데 그런 알리시아의 유일한 희망은 누군가와의 연결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알리시아가 치프를 자기 아파트 안으로 데려가 돌보면서 서로 친구가 되고 그 연결로 기쁨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알리시아가 치프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마지막 장면이다. 알리시아는 죽기 전에 비록 몇 초간이지만 누군가와 다시 연결을 맺고 또 매우 중요한 일을 한 것이다. 살라스와 나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에 관한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심리과 의사를 찾아 갔었다. 의사에게 내용을 얘기했더니 그가 ‘당신은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을 골랐다’면서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날 찾아오면 속으로 최대한 도와야지. 그런데 그럴 수가 있을지 모르겠네 라고 말 한다’고 들려주었다.”

-영화산업 경력이 미천한 파나마에서 영화를 찍기가 얼마나 힘들었는가.

“최근에 영화관계 법과 진흥 금 제도가 생겼지만 아직도 파나마에선 영화 찍기가 힘들다. 그 것은 영화 제작 경험 부족 때문이다. 생애 영화를 가장 많이 만들었다는 사람도 고작 3-4편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 분야 담당자나 배우나 감독 등이 다 경험이 미천하다. 영화산업 역사가 긴 다른 라틴 국가들인 멕시코나 브라질 및 컬럼비아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내가 처음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 2010년인데 그 때 누군가가 날 찾아와 ‘1948년에 파나마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된 이래 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되는 첫 파나마영화’라는 말을 듣고 내 부모에게 물었더니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나 연구할 자료도 충분하지가 못하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지만 최근에 영화제도 열리고 점차 나아지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운이 좋아 촬영과 편집 등 여러 부문에서 경험이 풍부한 12개국의 외국인들을 쓸 수가 있었다. 그들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러나 난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파나마에서 영화 찍는 것을 사랑한다. 우리에겐 아직 말해지지 않은 얘기들이 많다. 따라서 난 결코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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