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총기문화의 심각성이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나이, 성별 불문하고 총격사건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만도 장난이든 실수든 10대 미만의 어린이들이 잇달아 총기사건을 일으켰고, 20대 젊은 여성도 교내에 침입해 총격을 발사해 7명이나 숨지게 하였다. 이처럼 놀라운 현실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페덱스 불량의 법칙이다.
페덱스에는 1:10:100의 법칙이 있다. 이 회사는 어떤 작은 품질 불량도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불량이 생길 경우 즉각 조치하면 1달러의 원가가 들지만, 책임소재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10달러로 비용이 올라가고, 고객의 클레임으로 발전되면 100달러의 해결 비용이 들어간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문제 해결을 근본적으로 하지 않고 남 탓으로 돌리고 원인을 방치하면 1:10:100이 아니라 1:10:100:1000까지 가서 결국 어떤 조직이나 커뮤니티,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보편적 진리를 수치화한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이 법칙을 피부로 알고 있다. 패망한 이조 오백년의 역사에서, 또 일제시대의 나라 잃은 뼈저린 실패에서 여실히 경험했다. 비슷한 경고로 약 100여년전 살았던 하인리히에 의한 하인리히 법칙에서도 알 수 있었다. 그의 1:29:300의 법칙은 어떤 대형사고 발생 전에는 반드시 수백 번의 경고 신호가 있고, 그로 인해 29번의 더 큰 신호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형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이전에 반드시 자잘한 사고들이 이어지는 과정속에서 발생된다. 하지만 미숙하거나 부주의한 사람들로 인해 벌어진다는 점을 상기하자. 미국사회 총격사건같이 대형사건은 한인커뮤니티내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요즘 흔히 발생하는 작은 사건들을 보면 마치 아주 큰 사건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팬데믹과 그에 따른 봉쇄 조치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정신 건강에 큰 타격을 주었다. 고립으로 인한 일상의 혼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특히 청소년들에게 큰 불안과 우울증을 유발시켰다.
얼마전 플러싱에서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한 20대 아들의 소식은 지금도 뇌리에 남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 이민와 부모의 작은 울타리 안에서 헤매는 한인 2세들. 그들을 보면 매우 안쓰럽다. 부모들이 자녀를 어릴 때부터 좀 더 큰 세상을 향해 어깨를 활짝 펴고 도전하라고 격려해주면 안될까.
이제껏 자녀가 부모를 해친 사건들을 보면 모두 비극적이고 충격적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이러한 참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좀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가족 문화가 해체되는 세상에서 한인 젊은 세대는 부모와 사회의 안녕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우선시하면서 자랐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한인커뮤니티 차원의 해결책이 급선무다.
2세대와 부모들 사이에는 종종 정서적 단절이 있다. 요즘처럼 급박하게 변화하는 시절에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2세대는 부모 세대가 완전 이해 못하는 기술과 소셜 미디어가 리드하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성장했다. 두 세대의 연결을 위한 교계의 절대적인 도덕적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동안 가톨릭교회는 성추문과 그를 덮으려는 다양한 소송, 학대 사례들을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성직자들은 신도들보다는 자신들의 권력과 명성을 우선시했다. 개신교 목회자도 깨끗하다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 성직자들은 자신을 냉정히 성찰하고 신도들의 신뢰와 존경을 되찾기 위해 변화를 해야 할 때다. 아무리 성스러운 절대자와 하나님의 왕국을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페덱스를 쓰지 않는 교회는 없고, 어느 기관도 페덱스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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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