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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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023-04-02 (일) 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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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와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찾아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봄날 (김용택)

우리도 포토맥 강가와 볼티모어 앞바다로 봄바람 나러 봄나들이 갈 것이다.
한국에선 봄이면 황사로 고생하며 중국을 욕하며 지내다 미국에 오니 공기가 깨끗해서 좋다하니, 아는 이가 이곳의 자연은 날 것 그대로이니까 좀 기다려 보란다.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와 야외 취침을 해도 끄떡없다던 남편은 반바지에 맨발 슬리퍼로 온갖 풀을 맨손으로 뽑아대더니 손과 발이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고, 나는 잔소리하며 구경만 했는데도 온몸이 부풀었다.

병원엘 가니 영어로 포이즌이라고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한가득 주며 쉬운 말로 풀독이고 두드러기란다. 남편은 작업화를 벗을 때마다 양말에 진물이 묻어났고, 나는 약에 취해 가을까지 원피스잠옷 귀신처럼 지냈다. 그 뒤로도 장화, 긴옷, 모자, 장갑과 벌레약을 뿌리지만 해마다 고생한다.


할일 많은 거친 봄볕엔 며느리 내보내고 수확이 풍성한 가을 볕엔 딸 내보내는데 할머니인 나는 아직도 며느리처럼 봄이 되면 호미랑 삽을 들고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닌다. 주차장만한 텃밭인데도 어찌나 할 일이 많은지 날이 밝으면 나가 배가 꼬르륵해서 기어 들어와 아이고 난 새참 주는 놈도 없네 하며 허겁지겁 퍼먹는다. 봄이 되어 땅이 부풀면 인간 트랙터인 남편이 곡괭이와 삽으로 마구 뒤집고 온갖 거름을 부었더니 이제는 제법 흙이 부드러워지고 검은 빛도 난다. 그래도 워낙 오래된 집터라 온갖 뿌리를 해마다 잘라내고 뽑아내도 끝이 없다. 예전엔 거름 냄새가 나면 에이!하며 찡그렸는데 요즘엔 킁킁거리며 야! 저집은 부자인가봐! 똥거름 많다며 부러워한다.

지난번엔 귀하고 비싼 닭똥 거름을 준다기에 온 몸과 차 바닥에 똥물을 질질 흘리며 얻어왔다. 거기에다 겨울 내내 온갖 찌꺼기와 톱밥으로 내가 만든 퇴비도 부어놓으니 냄새는 진동하지만 봄농사 준비는 다 되었다.

우리가 거름 만들기에 진심인 것은 텃밭 농사가 왜 보잘것 없는지를 알고나서다. 우리는 맛있는거 먹으면서 밭에는 꼴랑 봄에 퇴비만 몇 푸대 살살 덮어놓고 투덜거린 게 원인이라는 걸 알고 텃밭도 잘 먹였더니 나를 닮아 짜리몽땅하지만 몇년 전부터는 오이 토마토 가지 허브가 제법 열리고 고추도 우리 생각엔 대풍년이라서 따도 따도 열리는것 같아서 흐뭇하다.

텃밭이 안정을 찾아가니 남편이 인터넷으로 배운 가지치기를 한다며 이상하게 자른뒤로는 대추 살구 매실 단감 수확이 별로였다. 올 봄엔 나무에 살이 좀 오른것 같았는데 어느새 살구꽃이 한창인 나무에 올라가 있는 꼴에 나는 사다리를 팍 차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교양있게 봄에는 가지치기하는게 아니니 좋은 말 할 때 내려와 새참 드시라고 달랬다.

그래놓고 나 또한 봄이 되면 응! 급할거 없어요! 서두르지 마세요! 해놓고 냅다 홈 디포로 달려가 손주들이 좋아한다고 몇년째 심고 죽이는 블루베리 묘목과 야채모종을 추울까봐 거실에 들여놓고 구박을 받는다.

아직은 차가운 봄바람에 재채기를 해가며 저녁이면 끙끙 앓으면서도 내가 뽑은 잡초를 쌓아놓고 일 자랑을 한다. 그런데 저 민들레 같은 잡초는 가만히 보니 치커리인가? 허브인가? 새싹들은 언제나 비슷해 보이는데 내일 다시 심으면 혹시 살아날 수 있을까?

<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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