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일 정상회담과 더 복잡해진 한중관계

2023-03-24 (금)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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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정상회담이 끝났다. 한국이 문제 해결을 주도했으나 4월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주저하면서 엇박자를 보였고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정작 한일 관계 개선을 가장 반긴 것은 미국이다. 그동안 한일 양국이 과거사에 발목을 잡힌 상태에서 북한과 중국의 위협을 염두에 둔 한미일 안보 협력이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우려를 불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말에도 불구하고 “한일의 발표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의 협력과 파트너십의 신기원이라는 새 장을 열 것”이라고 밝히는 등 회담 결과에 고무됐다. 곧 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미국을 국빈 방문해 양국 관계를 글로벌 전략 동맹으로 발전시키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한미일의 행보를 확인한 북한은 연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통해 무력시위를 하고 있고 ‘자유의 방패’라는 한미 연합연습 기간에도 최대한 긴장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북한의 우방인 중국도 한일정상회담이 경제적·외교적으로 자국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깎아내렸다. 중국 외교부는 “성실하고 책임 있는 태도로 역사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기초 위에서 아시아 국가들과의 정상적 국가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개별 국가들이 폐쇄적 소집단을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북한이 동의한다면 한국이 제시한 담대한 구상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속내는 미국과 한국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실제로 중국은 기존의 한반도 3원칙, 즉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에 더해 최근에는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전략적 인내 기조를 유지하는 한미 양국을 겨냥해 북핵과 북한 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중국이 한국의 요청대로 건설적 역할을 떠맡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13일 폐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세 번째 국가주석으로 선출된 시 주석은 첫 해외 방문지로 러시아를 택했다. 그는 양회 기간 중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가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봉쇄·통제·압박하는 미증유의 엄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이런 차원에서 중러정상회담에서는 “신냉전 및 ‘민주 대 권위’라는 가짜 명제에 대해 다극화, 국제 관계의 민주화, 패권과 신냉전 반대”를 강조하면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옹호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한 데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휴전을 제의하면서 미국의 전략적 공백을 파고들고 있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 예의 ‘피로 응결된 관계’를 강조하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지지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의 인권 문제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에 대해 북한을 두둔하고 있다.

이처럼 한일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를 보다 선명하게 만들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한 외교적 공간은 위축되고 있다. 2017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이후 중단된 한중정상회담도 당분간 성사되기 어렵다. 무엇보다 양국 간 현안에 대한 의제 조율이 쉽지 않고 방문 순서를 둘러싼 외교적 프로토콜에서도 인식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한일 관계처럼 미래를 내다보면서 실사구시 차원에서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결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외교가 한미 관계와 한일 관계를 연계해 한미일 안보 협력을 공고화한 후 한중 관계를 풀겠다는 단계론을 접지 않는 한, 몸집을 불린 중국의 호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외교의 핵심은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대면하는 용기와 지혜다. 한미일 관계와 한중 관계를 동시에 저글링 할 수 있어야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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