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들러리 인생, 들러리 국가

2023-03-24 (금) 강창구 위싱턴 민주평통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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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리’는 순 한국말이다. 흔히 결혼식 때 신랑 신부 양측의 친구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미국에서는 신부의 들러리를 Bridesmaid, 신랑 들러리를 Groomsman이라고 부른다.

이는 약탈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다. 지금도 키르키스스탄에서는 납치혼이 성행한다고 전해지고 있고, 역사적으로는 유목민족인 몽골지방에서 행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보쌈’ 등이 있었다. 결혼식 때 예기치 못한 사태 발생 시에 주인공 신랑과 신부를 지근거리에서 보호하는 임무를 띤 역할이라고 보면 무난하다. 들러리의 또 다른 해석은 ‘중심인물의 주변에서 그를 돕거나 그를 돋보이게 하는 인물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며칠전 인터넷에서 충격적인 글을 하나 읽었다. 한 아버지가 아들과 결혼과 출산에 대해 나누었던 내용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묻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현재 자신의 처지를 보면 평생 남의 ‘들러리 인생’뿐인데 그걸 또 자식에게 물려주겠는가”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식의 그런 처지를 아버지인 자신이 만들어 주었다는 자책감에 차마 대화를 더 이어갈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교육’은 개인의 향상은 물론 사회적 가치를 높이고 국가역량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었다. 뉴욕 시립대 교수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얼마 전 ‘우파는 교육을 원치 않는다’란 칼럼에서 미국의 공화당은 대학교육을 원치 않는다, 그들이 보전하고 있는 기득권 유지에 실패할까봐, 즉 ‘사회적 무지’를 유지하기 위해 교육과 전쟁을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말하자면 고분고분하는 사람들만 필요하니 국가적인 대학교육 지원을 줄이자는 것이다.

2015년까지, 즉 트럼프 이전까지의 공화당은 대학의 국가적 역할이 매우 크다는 시각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대학에서 진보적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싫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비판적 인종이론을 연구하는 것, 백신이 코로나에 효과가 있다는 것, 온실가스가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가르치는 것이 진보주의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유권자들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을 제시한다. 이는 실제로 선거 결과에서 확인되고 있다.

교육에 관한한 초인류적인 한국은 어떨까. 미국이나 한국이나 성공의 사다리가 없어진지 오래요, 이걸 치워버리려는 소수 엘리트집단에 국가사회가 중독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 신분 양극화 해소는 천상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른다. 미국도 제도만 그럴듯할 뿐 자본에 의한 권력의 횡포는 이미 고착화된 상태이다. 그나마 교육이 유일한 해결책인데 공화당은 그걸 방해하고 있다.

WEF(다보스포럼) 발표 2022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141개 조사국 중 13위다. 2022 발표(IMF) 한국의 GDP도 세계 13위다. GFP 2021 발표 군사력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6위의 군사강국이다. 2023 UN 정회원국 수는 193개국이고, ISO(국제표준화기구)에서는 246개국이 인정된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주변국도 아니고, 최상위 5% 국가이다. 따라서 들러리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최근 국제 외교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면 한국이 들러리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특히 경제와 무역은 하루하루가 국가 간의 전쟁이다. 눈코뜰새 없을 정도로 어지러운 하루하루다. 이제는 너무나 멀어진 이야기 같지만 남북한이 통일을 위한 노력을 지속할 때에만 비로소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주인공의 위치를 다시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창구 위싱턴 민주평통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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