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아시안아메리칸유권자조사(AAVS)에서 태평양계아시안아메리칸 6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치성향 조사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재미한인 중 지난 12개월 내에 종교기관에 헌금을 낸 사람들은 40%나 되는 반면, 지난 1년 동안 정당, 정치인, 선거 캠페인 등에 기부한 한인은 12%에 그쳤다는 것이다. 28%, 무려 세 배가 넘는 현격한 차이이다.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고 “미주 한인들은 종교생활은 적극적인데 정치 참여는 소극적이구나” 라고 단정한다면 이는 지극히 1차원적인 진단이다. 일반적인 예상과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결과이지만, “왜 그럴까?” 하고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합리적인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로 우리의 미국 이민역사가 120년이다. 고달픈 이민생활에서 종교단체는 단순히 믿는 사람들만의 신앙공동체에서 머물지 않고, 정기적으로 한인들끼리 모이는 친목의 장을 마련해 주었고, 한글학교를 비롯한 문화활동을 통해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는데 큰 힘을 보탬은 물론, 한인들의 생활 전반을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는 민족공동체 역할을 수행하며 꾸준히 한인사회에 기여해 왔다. 한 마디로 맨 밑바닥에서부터 어우러져 뒹굴고 다지며 함께 커 왔던 것이다.
반면에 정치는 아직까지 종교단체만큼 대중을 결집시켜 집단화할 정도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이민 1세대들은 언어장벽과 문화차이 및 편견과 차별을 딛고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자영업을 시작했고, 낯선 땅에 정착하기에도 벅찼다.
이후 1.5세 또는 2세들이 다양한 분야로 미주류 사회에 거침없이 속속 진출하면서 불합리한 법안과 정책의 시정을 위해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는데, 한인 정치인을 배출하자는 움직임은 1992년 LA 폭동을 겪으면서 비로소 본격화 되었으니, 이제 겨우 30년에 불과하다.
미국내 소수민족의 정치력 신장은 그 커뮤니티의 경제력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기껏해야 본인의 사업과 소유 부동산의 이해관계가 지역 정치와 밀접하게 연계된 소수만이 후원자로 나설 뿐이고, 한인 정치인을 배출하기 위해 투표를 독려하는 뜻있는 분들의 호소는 한낱 대답 없는 메아리로 거리를 떠돌 뿐이다.
공동체 안에서 누구도 들러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구성원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리더십의 본질이다. 한인 종교단체는 되는데 한인 정치집단은 왜 안되는가? 결국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헌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공동체가 ‘같이’의 가치를 공유하고, 더불어 함께 하고 나눌 가치(價値, Vision)를 ‘같이’ 만들어 나갈 때, 그 공동체에 사람도 모이고, 후원도 기부도 쇄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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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김/전 재미부동산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