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할랄’이 뭐길래? 식품업계·동물복지 ‘뜨거운 감자’

2023-03-22 (수) 이용재 음식 평론가
크게 작게

▶ 이용재의 식사 - 할랄 이해하기

‘할랄’이 뭐길래? 식품업계·동물복지 ‘뜨거운 감자’

피타빵 위에 양고기를 잘게 다져 올린 할랄 푸드 램 아라이스. [잇쎈틱 제공]

‘할랄’이 뭐길래? 식품업계·동물복지 ‘뜨거운 감자’

할랄 인증을 받은 우리나라 식품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제공]


국내 식품 기업의 할랄 진출을 위한 행보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19년 기준 3,000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시장인 데다가 오는 2025년 세계 인구의 약 30%인 20억 명이 무슬림이 된다는 인구 추계와도 관련이 있다. 한마디로 할랄은 국내 식품 기업들에‘새로운 개척지(New Frontier)’인 셈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중동은 물론 동남아의 무슬림 시장을 위한 맞춤형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처럼 개척만 잘 한다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할랄 시장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기준도 까다롭거니와 인증 절차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한 인증 절차가 아닌, 종교와 깊이 얽힌 문화권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은 할랄의 이해를 돕는 콘텐츠를 준비했다.

할랄(halal)은 ‘허용된 것’이라는 의미로 이슬람의 율법 샤리아에 부합함을 의미한다. 비단 식품과 식생활뿐만 아니라 재화와 서비스를 포함한 상품의 생산, 유통, 광고, 판매, 소비 등 모든 과정에 적용될 수 있다. 샤리아에 의하면 인간의 행위는 다섯 범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준수해야 하는 의무적인 행위 파르드 또는 와집으로 예배와 단식 등이다. 두 번째는 의무는 아니지만 윤리 및 도덕적으로 올바르므로 실천하면 바람직하고 좋은 무스타합 또는 만두브이다. 세 번째는 일상에서 샤리아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행위, 즉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가 없거나 판단할 수 없는 중립적 위치에 있는 인간의 행동을 아우르는 무바흐 또는 자이즈이다. 네 번째 범주는 처벌받지 않으나 바람직하지도 않으므로 삼가해야 할 행위인 마크루흐이다. 마지막인 다섯 번째는 하람으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금지된 행위이다. 할랄은 이 다섯 범주 가운데 파르드, 무스타합, 무바흐에 해당되는 행위를 포함하며, 마크루흐는 대부분의 법학자들이 할랄에서 제외한다.


이슬람의 음식 문화는 허용된 것인 할랄과 금지된 것인 하람으로 나뉘는데 근거는 쿠란이다. 예를 들어 쿠란 제5장 3절은 육류에 대해 규정한다.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와 하느님의 이름으로 잡지 않은 것, 즉 교살된 것, 때려잡은 것과 떨어뜨려 죽인 것, 서로 싸우다 죽은 것, 다른 야생 동물이 먹다 남은 것, 우상에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 등을 금한다. 그 밖에도 대부분의 곤충과 파충류, 맹수와 같이 송곳니가 있는 동물, 매나 독수리 등의 맹금류는 금지된다.

다만 원칙적으로 금지된 음식이더라도 정황에 따라 예외가 적용되는 경우는 있다. 기아의 상태에서 생명이 위험할 때(코란 2:173) 또는 무의식 중에 먹었을 때(16:115)라면 허용된다.

율법에 따라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동물성 식재료는 모든 종류의 소, 양, 염소, 낙타, 모든 종류의 벌레, 토끼, 물고기, 그리고 메뚜기이다. 반면 돼지와 그 가공식품, 잡식 동물, 맹금류, 양서류, 동물의 피와 생식기, 췌장과 쓸개 등은 먹을 수 없다. 물론 식재료가 자동적으로 할랄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물고기와 메뚜기를 제외한 동물은 이슬람식 ‘다비하(Dhabiyiha)’ 의식을 따라 도축해야 할랄로 분류되고 먹을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다비하는 동물이 느끼는 고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도축법이라 비이슬람 문화권에서 잔혹함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비하를 따르려면 일단 짐승의 머리를 메카(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태어난 곳)를 향해 눕히고 기도를 한다. 그리고 단칼에 목을 친 뒤 몸속의 피를 하나도 남김없이 빼내야 한다.

일각에서는 냉장고가 없던 건조한 사막 기후의 중동에서 고기가 부패하지 않도록 피를 모두 빼내는 도축 방법이 자리를 잡았다고 주장한다. 어찌 되었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동맥과 정맥, 식도를 자르는 행위는 ‘고통 없이 죽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무슬림들은 목을 자르는 동안 동물이 의식을 잃기 때문에 일반적인 도축법보다 고통이 심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다르다. 2003년 영국의 농장동물복지위원회는 의식이 있는 동물의 목을 자르면 죽기 전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목을 단칼에 자른다고 해서 바로 목숨을 잃는 것도 아닌 데다가, 피가 효율적으로 빠지도록 거꾸로 매달아두는 탓에 고통이 극대화된다고도 한다.

앞서 밝혔듯 전 세계적으로 무슬림 인구가 늘어가는 추세 속에서 문화적인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보인다. 2018년 2월, 영국의 식품부와 동물복지 운동가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졌다. 영국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출하는 양고기가 도축 당시 기절하지 않은 상태였음을 할랄 모니터링 위원회에 확인받아야 한다는 식품부의 발표 때문이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에서는 원칙적으로 동물을 전기총 등으로 기절시킨 뒤 도축해야 한다는 합의가 존재해왔다. 하지만 지역 사회 이슬람인들의 종교적 요구를 들어준다는 명목으로 다비하를 허용했고, 할랄 식품 수출을 위해 동물의 고통을 무시한다는 차원에서 비판을 받았다.


한편 네덜란드에서는 영국과 정반대의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2018년부터 가축이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도축 전 의식을 잃게 하는 새로운 법규를 시행했다. 그전까지 종교적 차원의 도축을 허용해왔지만, 동물이 목을 자른 뒤 40초가 지났는데도 의식이 있으면 기절을 시켜야 하는 법을 도입하면서 무슬림의 반발이 심해진 상황이다.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는 이슬람식 도축을 전면 금지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동물의 의식이 없는 가운데 다음 도살 단계로 넘어갈 것을 명시한다. 이를 준수하고자 대부분의 도축은 머리를 해머로 때리거나 전기로 충격을 줘 기절시킨 다음 이뤄진다. 그런 가운데 할랄 식품의 국내 생산이 늘어나며 국내에도 2017년, 국제 인증을 받은 할랄 도계장이 최초로 문을 열었다.

아랍에미리트의 아랍표준측량청(ESMA) 등록 인증기관인 JIT(Japan Islamic Trust)에서 인증을 받은 도계장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전기충격기의 사용이 금지된다. 또한 율법을 엄격히 따르는 무슬림 도계 전문가가 수작업으로 닭의 경동맥을 절단한다. 돼지나 소고기 등을 모두 취급하는 일반 도축장과 달리 할랄 전용 도계장으로만 운영되며 도축된 닭고기의 운반 또한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전용 차량만 쓴다.

이 도계장 외에 할랄 식품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육류의 인증 및 시장 진출은 아직까지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 할랄 시장의 확대로 도축장을 설립하기 위한 움직임이 생기자 동물단체의 반발이 뒤따랐다. 한편 정부가 할랄 도축장을 위한 예산으로 55억 원을 책정했으나 여러모로 난항에 빠져 백지화되었다. 기본적인 인증 절차부터 까다롭지만 타 종교의 반발, 지역 주민의 반대 등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바로 지난달, 한우의 첫 할랄 시장 수출이 거의 확정된 상태라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최근 할랄 인증기관인 말레이시아 자킴(JAKIM, 말레이시아 이슬람개발부)이 내한, 홍성의 할랄 전용 도축장을 방문해 현장 실사를 벌였다. 공식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수출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자킴에서 한우가 통과되면 무슬림 지역으로 수출할 때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된다.

한편 식품의 유통과 판매 과정에서 비이슬람적 요소가 개입되었을 우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할랄 식품의 범주가 법학파의 해석이나 지역의 전통에 따라 다르다거나 할랄 인증기관마다 기준이 다른 현실 또한 때로 할랄 여부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이용재 음식 평론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