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인회 회장 후보자 자격 시비로 뉴욕한인사회가 혼란에 처할 뻔했다. 그러나 관계자들의 노력과 지혜로 회칙을 개정하여 새로이 선거를 치르도록 극적인 타결을 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타협의 결과를 가져오게 한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현 한인회 회칙은 회장 출마자격자는 뉴욕한인회의 임원, 유급직원, 이사, 한인회위원회의 각종 위원회 회원으로 2년 이상 활동한 사람으로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각계각층의 한인들을 대표한다는 뉴욕한인회가 특정그룹에 한하여 자격을 주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한인회에 관여했던 사람만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 한인들을 대표하는 단체라 할 수 없다. 세계의 중심지 뉴욕에 있는 한인회의 회칙이 고작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1976년 콜로라도 덴버에서 콜로라도한인회 회칙 개정 공청회가 있었다. 회칙개정 초안에 한인회원과 회장자격 규정이 있었다. 한인회장은 100% 한인 혈통을 가진 자로 규정하고 회원도 100% 한인혈통을 가진 자로 규정했다. 이에 대한 의견이 없이 거의 통과 될 무렵이었다.
김영철 옹이 영어로 발언을 했다. “이 규정은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곳에는 외국인과 결혼하여 태어난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도 한국인의 혈통입니다. 이 나라에서 우리 한국 사람은 소수민족입니다. 소수민족인 우리가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되지 않습니다. 모두 포용하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날 회칙은 김영철 옹 의견대로 만장일치 통과되었다. 수십 만이 살고 있는 오늘의 뉴욕이 아니라 불과 수백 명 한인밖에 없었던 거의 반세기 전의 콜로라도 한인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김영철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10대에 독일 유학을 하기위해 상해로 향했다. 독일행을 포기하고 상해에서 독립군을 포함 애국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왔다. 그는 늦게 덴버 이스트 하이스쿨을 마치고 미국 육군에 자원, 2차 대전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정부의 지원으로 평생을 홀로 지냈다. 그는 이승만 등 애국자들이 콜로라도에서 애국모임을 했을 때 심부름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말은 전혀 하지 못하지만 한인회 모임에 참석했다.
미국에서 한인들이 운영하는 한미장학회는 매년 400명 이상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장학금의 대상자들은 한인혈통의 대학생들이다. 100% 한인혈통이어야 하는가? 25%는 물론 한국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장학금 수여대상이 된다. 50년의 역사를 가진 한미장학회는 전국에 8개 지역에 장학회를 두고 있으며 뉴욕에도 장학회가 있다.
수년 전 이찬우 한인 변호사가 뉴욕 퀸즈변호사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뉴욕주에서 두 번째로 큰 변호사협회다. 이 변호사는 소수민족 중 소수인 한인 변호사요 또 여성이다. 남녀 인종 색깔 분별없이 퀸즈 변호사협회 회원이면 회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한인회장 자격규정을 심의하는 관계자들은 한인회장 자격기준을 배타적(exclusive)이 아니라 포괄적 (inclusive)으로 회칙 제정을 하여야 할 것이다. 거액의 후보 등록비를 내고 한인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문호를 최대로 개방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더 좋은 한인회장을 발굴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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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진/전 뉴욕한인변호사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