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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는 경고음과 안전한 피난처

2023-03-1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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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미 증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3만3,100대에서 출발한 다우존스 산업 지수는 2주만에 3만4,300대까지 올랐고 작년 가을 4.3%까지 치솟았던 10년 만기 연방 국채 수익률은 1월 하순 3.4%까지 떨어졌다. 모두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의 급속한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가 잡혀가고 있고 그렇게 되면 머지 않아 금리는 다시 내려가리라는 기대감에 따른 현상이었다.

그러나 1월 고용 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한 것으로 나오면서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1월 한 달간 늘어난 일자리 수가 50만개를 상회하고 실업률은 50년래 최저 수준인 3.4%로 떨어지면서 노동 시장이 예상 외로 탄탄하며 인플레가 쉽게 내리지 않을 것이란 공포가 월가를 뒤덮었다. 미 주가는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고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한 때 4.1% 가까이 다시 올랐다.

그리고 지난 주 실리콘 벤처 기업의 돈줄 역할을 하던 실리콘 밸리 은행(SVB)이 전격 파산했다. 자산 2,000억 달러가 넘는 SVB는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으로 이번 파산은 2008년 금융 위기로 워싱턴 뮤추얼이 망한 이후 최대 규모다. 그러지 않아도 하락세를 보이던 다우 지수는 10일 폭락하며 3만1,900대로 장을 마감했다. 이와 동시에 안전 자산으로 돈이 몰리면서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3.7%까지 떨어지고 금값은 온스당 30달러 넘게 올랐다.


이 은행은 고객 유치금을 연방 채권에 투자했다가 최근 채권 가격이 크게 떨어져 손실이 발생한데다 고객들이 한꺼번에 돈을 찾는 소위 ‘뱅크 런’이 발생하자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은행이 비단 SVB 하나뿐이 아닐 것이란 불안이 확산되면서 이날 S&P 500 지역 은행 지수는 4.3%가 폭락, 한 주 손실율 18%를 기록했다. 2009년 금융 위기 후 최악이다.

이를 방치했다가는 금융 위기 재발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 속에 연방 재무부와 FRB, 연방 예금 공사(FDIC)는 은행 예금은 25만 달러까지만 정부가 보장하기로한 현행 규정과 관계 없이 전액 보증하겠다고 12일 밝혔다. SVB가 파산한지 이틀만에, 그것도 일요일에 이를 전격 발표했다는 것은 정부 당국이 이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나 하는 반증이다.

2020년 3월 팬데믹과 함께 1만9,000대까지 떨어졌던 다우 지수는 22년 1월에는 3만6,000까지 올랐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연방 정부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개인과 기업에 수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자금을 살포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FRB는 FRB대로 연방 기준 금리를 0%대로 떨어뜨렸다. 갈 곳 없는 돈은 주식으로 몰렸고 그 결과가 지난 몇 년간의 주가 폭등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연방 정부의 지원금은 이제 끊겼고 연방 금리는 4.75%에 달하고 있다. FRB는 최소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0.5% 포인트 이상 더 올릴 예정인데 그래도 인플레가 잡히지 않으면 6%도 가능하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안전도 100%인 연방 머니마켓 펀드에 넣어 두면 가만히 앉아 5% 이상 벌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반면 주식은 22년 1월 최고치에서 20% 떨어졌음에도 아직도 비싸다. 주가의 주요 척도인 주가 수익 비율(PE)은 S&P 500의 경우 역사적으로 14 정도인데 현재는 18로 2000년 닷컴 버블과 2020년 팬데믹 직후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다.

거기다 ‘불황의 전조’로 불리는 장단기 금리 역전폭은 40년래 최대로 벌어져 있다. 지난 주 10년 장기 국채 수익률은 3.7%, 2년물은 4.59%, 6개월물은 5.08%를 기록했다. 지난 40년간 7번의 수익률 역전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예외없이 불황이 찾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금리는 원래 기간이 길수록 높은 것이 원칙이다. 그만큼 불확실성도 커지기 때문에 투자가들은 당연히 더 높은 금리를 원한다. 그러나 지금은 인플레와 금리가 높지만 장차 경기가 둔화되고 둘 다 낮아질 것으로 보일 때는 지금과 같은 장단기 금리 역전이 일어난다. 경기 예측도 인생의 대부분처럼 확실한 것은 없지만 장단기 금리 역전만큼 장래를 정확히 맞춘 지표는 없다고 봐도 된다.

불황이 오면 기업의 수익은 줄어들고 당연히 주가도 하방 압력을 받게 된다. 반면 예상대로 인플레가 진정되고 불황의 조짐이 뚜렷해지면 FRB가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 때는 채권의 가격이 올라간다. 기존 높은 액면 금리를 받고 있는 채권 소유자들은 이를 팔 때 당연히 프리미엄을 받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지금은 주식보다는 채권의 시간으로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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