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발언대 - 의복

2023-03-13 (월) 박치우/커네티컷 독자
크게 작게
공자(孔子) ‘논어’ 에 보니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대로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라고 씌어져 있었다. 옷은 사람들 말고도 모든 각 생물들, 식물들, 심지어 무생명들에게도 입혀져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리고 한결같이 어떤 것에게 입혀진 각양각색 그들의 옷을 좀더 알고 있던 사람은 다윈(Darwin)이었을 것같다.

여하간 오직 사람들만 옷을 만들어 입어서 의복이라 한 것 같은데 그것도 다양한 종류가 있어 잘 선택하여서 입게 되어있다.
그런데 사람들도 다른 생물들처럼 누구나 똑같이 옷을 입었던 때가 복식사에 있다. 그것이 1900년대 영국 남성들이 입었던 마스큐린 드레스(Masculine Dress) 이다.

남성다움, 의로움, 패기, 고귀함, 이러한 철학적 요소를 구현하는 것이 옷에서 느껴지도록 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낫 익스프레스(Not Express), 남의 눈에 뛰어나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헌 옷을 입어 겸손(Humble)해 보여야 하는, 인간성도 강조된 옷차림이었다. 누구나 같은 모양을, 혼자 있거나 떼로 있어도 같은 차림을, 영국 런던 시가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영국 남성복식가들은 사람들 옷차림도 자연법칙을 따라야 하는 것으로 알았는지 복장에 구비되어야 하는 모자, 드레스 셔츠, 넥타이, 슈즈 등 모든 액세서리도 브랜드만 다를 뿐이었다.

가격면으로 질의 차이는 있었지만, 복식 룰을 어기는 차림은 마스큐린 드레스가 될 수 없었을뿐더러 신사다운 스타일이 아니어서 심지어 저소득층에서도 막일 하느라 입고 있던 작업복을 퇴근할 때는 드레스로 갈아입었었다.

세계적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영국 드레스를 수트(Suit)로 부르며 나름대로 입고 있지만 바른 이해가 요구된다. 의복은 커팅( Cutting)과 디자인(Design), 두 의미를 갖는다. 이 두 의미를 잘 이해하면 특히 남성들이 옷을 잘 입는데 도움이 된다. 여성복은 패션 디자이너(Fashion designer)에 의한 새로운 유행에 가치관을 두며, 남성복은 커트(Cutter)에 의한 전형적 격식을 따르는데 가치관을 두었었다.

당연히 여성복에 여성다움이 보이게, 남성복에 남성다움이 보이게 하는 것이다.
여성복에 다소 감성적인 것은 이해되지만, 남성복은 이성적이어야 했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위주로 남성의 사회참여가 여성에 비하여 광범위했었던 영향이다.
또,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면서 여성복도 이성적이어야 했다. 샤넬 디자이너의 샤넬 라인으로 인정했던 스커트 길이를, 무릎 밑 5cm로 고정했던 것이다.

그때로부터 70년후, 1970년대에 패션 디자이너가 대거 진출하면서 모든 생활방식 패션 감각이 감성적으로 급변하며 트레디션한 이성적인 것은 구태의연한 것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복 패션디자이너들이 대거 남성복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성복이나 여성복은 같은 범주 안에 있는 패션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철학가들의 예언이 20세기에는 감성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듯이 길에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19세기 남성들은 한결같이 수트 차림에 얇은 가죽 브리프 케이스( Briefcase)를 들고 출근 했고 20세기 남성들은 편한 스포티한 차림에 륙쌕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출근 하는 옷차림을 보게 되었다.

현대는 소위 복식문화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도 없다. 구태여 말하자면 다시 19세기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제 그것은 불가능하지만, 무엇에든 본연의 법칙 황금률(Golden Mean)과 과잉과 과소의 양극단을 초월해야 한다.

평향 편중 않고 균형, 밸런스( Balance)를 잘 이해하고 과거에 입었던 어떤 옷이든 다시 입어 남에게 나쁘지 않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인 것같다.

<박치우/커네티컷 독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