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SVB(실리콘밸리 은행) 전격 폐쇄… 역대 2위 규모 은행 파산사태 ‘일파만파’

2023-03-11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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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 폭락사태 하루만에 전격 칼 빼들어
▶ 예금인출 → 주가폭락 → 자본조달 무산 → 폐쇄

▶ 40년간 신생기업 자금줄… 스타트업 줄도산 우려
▶ 금융권 전반으로 위기 확산 가능성 예의주시

SVB(실리콘밸리 은행) 전격 폐쇄… 역대 2위 규모 은행 파산사태 ‘일파만파’

금융당국에 의해 전격 파산조치된 실리콘밸리은행의 출입문이 10일 널판지로 폐쇄돼 있다. [로이터=사진제공]

서부 스타트업들의 돈줄 역할을 해오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예금 인출 사태와 주가 폭락으로 초고속 몰락했다. 역대 미국에서 파산한 은행 가운데 2위 규모라는 점에서 금융권 전반으로 위기가 전이되는 게 아닌지 투자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당국 전격 폐쇄 결정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10일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후 FDIC는 ‘샌타클라라 예금보험국립은행’(DINB)이라는 이름의 법인을 세워 SVB의 기존 예금을 모두 새 은행으로 이전하고, SVB 보유 자산의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FDIC의 조치에 따라 25만 달러의 예금보험 한도 이내 예금주들은 13일 이후 예금을 인출할 수 있고, 비보험 예금주들은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액에 대해 FDIC가 지급하는 공채증서를 받아 갈 수 있다.

FDIC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SVB의 총자산은 2,090억 달러, 총예금은 1,754억 달러다. 미국 16위 은행인 SVB가 무너진 것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문을 닫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북가주 샌타클라라에 본사를 둔 SVB는 1983년 설립돼 캘리포니아주와 매사추세츠주에서 모두 17개 지점을 보유한 신생 기술기업 전문 은행이다. 이 은행이 무너진 것은 위기가 수면 위로 부상한 지 불과 이틀도 안돼서였다.

주요 고객인 스타트업들의 예금이 줄어든 탓에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어쩔 수 없이 매각, 18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는 전날 발표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이날 SVB는 22억5,000만 달러의 증자 계획이 무산되자 회사 매각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금융당국은 인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주지 않고 이례적으로 빠르게 칼을 빼들었다. 이번 사태로 이날도 퍼스트리퍼블릭 은행과 시그니처 은행 주가가 장중 20% 이상 폭락하는 등 월가에는 공포가 가시지 않고 있다.

■스타트업들 위기 맞나

금융당국이 SVB를 전격 폐쇄하면서 스타트업의 줄도산 우려가 나온다. SVB는 그동안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업계로서는 SVB 폐쇄가 충격적이다. SVB는 1982년 설립된 기술 스타트업 분야의 주요 은행으로, 40년간 VC(벤처캐피털) 및 스타트업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내 테크·헬스케어 벤처기업 중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2009년 후 2,300억 달러 규모의 투자유치에 참여했다. 이런 까닭에 재무 구조가 열악한 스타트업은 자금줄이 막히게 되면서 자칫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예금자 보호 한도인 25만 달러 이상의 예치금은 묶이고 전액 돌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기간이 걸려 자금 융통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금융권 전반 위기 가능성은

그러나 대형은행을 비롯한 금융권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일반 은행들이 기술 분야 스타트업에 특화된 SVB처럼 갑작스러운 인출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9일 총 52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날렸던 4대 대형은행들의 주가는 이날 약보합 내지 소폭 상승으로 안정세를 되찾은 모습이다.

정부 당국 역시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위기감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분위기다. 재닛 옐런 연방 재무장관은 이날 연준 등 관계 기관과 만나 SVB 사태 대책을 논의하면서 은행 시스템은 여전히 유연하고 당국은 이 같은 일에 대응할 효과적 조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재무부는 전했다.

서실리아 라우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도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우리 은행 시스템은 10여년 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상태”라며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도입한 스트레스 테스트 등 개혁 조치 덕분에 금융 당국은 우리 은행 시스템의 회복력을 강화할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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