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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번호판 1번 소유자들의 은퇴

2023-03-05 (일) 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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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주들도 비슷하겠지만 버지니아 주에서는 자동차 소유자들이 자신 나름의 고유한 차량 번호판을 주문해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허용이 안 되는 번호판들도 있다. 이미 다른 용도로 배정이 되어 있을 경우이다. 그 가운데 우리가 낮은 숫자의 번호만 덩그러니 있는 번호판을 본다. 이는 다름 아닌 버지니아 주의원들의 차량이다.

버지니아에는 100명의 주 하원의원들과 40명의 주 상원의원들이 있다. 그들이 모두 고유 번호판을 사용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아는 의원들은 모두 사용하고 있다. 주 하원의원들 번호판은 윗부분에 주 하원 (House of Delegates)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번호는 1번부터 100번까지이다. 상원의원의 경우에는 번호판 아래에 상원의원(Senator)이라고 적혀 있고 번호는 1번부터 40번까지이다.

그런데 그 번호들은 선출된 순서대로 발급을 받기 때문에 가장 오래 의정 활동을 했던 의원이 자연스럽게 1번을 갖게 된다. 그래서 번호판들을 보면 누가 더 다선인가 가늠해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가끔 의정 활동을 멈추었다가 다시 출마해 선출되어 의회로 복귀하는 의원들이 있다. 그런 의원들의 경우에는 차량 번호판 발급에 있어서는 다시 초선 의원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번에 상원의원 차량 번호판 1번과 하원의원 차량 번호판 1번 소유자 둘 모두 은퇴를 선언했다. 즉, 이번 가을의 선거에 출마를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이면 두 차량 번호 소유자들이 바뀌게 된다. 둘 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고 페어팩스 카운티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그리고 80대에 들어선 노정객들이다.

상원에서 은퇴하는 딕 새슬러(Richard Saslaw) 의원은 4년간의 주 하원의원 직 역임을 포함해 모두 48년간의 의정 활동을 마감한다. 그는 오래동안 상원 민주당 원내 총무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사안에 따라 공화당 의원들과 종종 뜻을 같이 하기도 해 진보적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올해로 83세이니 30대 중반부터 의정 활동을 시작한 셈이다.

새슬러 의원과 나의 인연은 내가 처음 교육위원에 도전했던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나와 나이 차이도 많았지만 출마 인사차 찾아가 도움을 청했던 내가 상당히 긴장했어야만 했던 첫 만남이 기억난다. 그가 당시에 운영하던 개스 스테이션 뒤에 임시 사무실로 사용하던 트레일러에서 만났다. 새슬러 의원 입장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젊은 아시안 이민자가 찾아와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니 난처했을 수 있다. 내가 교육 이슈에 별로 아는 것도 없어 보였기에 일단 버지니아 주 교육 행정과 법률에 해박한 사람 한 명을 소개하며 찾아가 배우고 오라고 했다. 그 때 소개를 받은 사람은 현재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최고참 하원의원으로 이번에 은퇴하는 켄 플럼(Kenneth Plum) 의원은 지역구가 레스톤 지역인데 무려 44년간의 의정활동을 마친다. 임기가 4년인 주 상원의원과 달리 주 하원의원의 임기는 2년이니 자그만치 22선 의원인 셈이다.

그런데 그의 의정 활동 연혁을 보면 중간에 2년이 비어 있다. 첫 선거였던 1977년에는 한 지역구에서 5명씩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도였다. 공화, 민주 양당에서 모두 10명의 후보가 출마해 플럼 후보는 5등으로 가까스로 당선되었다. 6등과는 단 50표 차이. 그러다가 재선 도전 때 7등으로 밀려 낙선했다. 그러나 그후에는 21번을 내리 당선되었다. 올해 81세이다.

80대의 노정객들이 은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그들이 내가 사는 북버지니아 지역의 이익을 대변해 주의회에서 행사했던 막강한 영향력을 그들의 후임이 될 초선의원들로부터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초선의원들의 차량 번호판 번호가 1번까지 올라 가려면 아마도 족히 30년은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40여년씩 열심히 활동을 한 새슬러 상원의원과 플럼 하원의원을 계속 붙잡아 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오랜 수고에 감사한다. 그리고 올해 11월에 선출될 후임자들에게도 건투를 빈다.

<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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