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국제축구연맹 최우수상 시상식이 열렸다. 지난 한 해 전 세계 축구경기장에서 가장 빛났던 선수, 감독, 골키퍼 등 각 분야의 최고를 선정하고 축하하는 행사이다. 최고의 선수로는 리오넬 메시, 최고의 감독으로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끈 리오넬 스칼로니 등 쟁쟁한 스타들이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런데 이날 시상식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따로 있었다. 푸스카스상을 받은 마르친 올렉시라는 폴란드 선수였다. 헝가리의 전설적 스트라이커 페렌츠 푸스카스를 기념하기 위해 근년 제정된 이 상은 그해의 가장 멋진 골을 축하하는 특별한 상이다. 한국의 자랑인 손흥민이 지난 2020년 수상자였다.
올렉시는 다른 수상자들과 좀 다르다. 유명 스타가 아닌 무명의 선수이자 한쪽 다리를 잃은 절단 장애인이다. 그에게 세계의 이목이 쏠린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폴란드 절단장애인 축구경기 대회 중 그가 목발에 온몸을 지지한 채 곡예 하듯 날아올라 성공시킨 오른발 바이시클 킥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환상적인 그의 골 장면은 매스컴과 소셜미디어를 타고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더니 마침내 최초의 장애인 푸스카스상 수상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경이로운 골만큼이나 감동을 준 것은 그의 수상소감이었다.
그는 자신이 수상자가 된 의미를 말했다.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 자신과 모든 절단장애 축구선수들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의 운명이 있습니다. 내게 이 상이 주어진 것은 절단장애 축구인의 얼굴이 되라는 것입니다. 내 모습을 오늘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지켜보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일어섭니다. … 우리는 끝까지 싸워낼 것입니다.”
36살의 올렉시는 과거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하부 리그의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러나 2010년 사고로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하면서 축구와 멀어졌다. 아내가 첫 아기를 임신한 데다 절단 장애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상황에 스포츠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9년이 지나고 축구공을 다시 잡은 것은 순전히 아들 때문이었다. 귀엽게 자란 아들과 같이 공을 차고 싶은 마음에 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아이들 골키핑 코치를 하다가 절단장애인 축구선수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축구에 대한 열정이 다시 불붙었다.
세상에는 다리나 팔이 다른 모습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기형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불의의 사고로 잃기도 하며 대부분은 전쟁터에서 팔이나 다리를 잃는다. 수백년 서구 식민지배 후 내전으로 오래 고통 받았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이스라엘 공습이 멈추지 않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등 불운한 지역에는 절단장애가 흔하다. 한창 젊은 나이에 팔다리를 잃고 고통과 분노, 절망감에 시달리는 이들을 어떻게 재기시킬 것인가는 이들 사회의 크나큰 과제이다. 그리고 종종 축구가 희망의 도구로서 한 역할을 한다.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이 좋은 예이다. 우리에게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통해 알려진 이 나라는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장장 11년 동안 내전에 시달렸다. 인구 600만이 못 되는 나라에서 5만명이 죽고 수천명이 팔이나 다리를 잃은 참혹한 전쟁이었다. 당시 난민캠프마다 넘쳐나는 절단 장애인들을 보면서, 더 이상 미래도 기회도 없다며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그들을 보면서, 맘부드 사마이라는 목사는 고심했다. 그때 한 미국인 선교사가 알려준 절단장애인 축구가 길이 되었다. 축구는 공 하나 있으면 되는 운동, 돈이 들지 않으니 시작이 쉽다. 그렇게 장애인들을 모아 축구를 시작하자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공을 쫓느라 몸을 움직이며 얻는 즐거움,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어울리며 얻는 연대감, 경기에서 이기며 얻는 자신감이 삶에 대한 용기로 이어졌다.
절단 장애인 축구는 1980년 미국에서 재활 목적으로 시작된 후 세계 각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월드컵 대회도 열린다. 세계 절단장애 축구연맹 규정에 의하면 경기는 목발을 짚은 외다리의 선수들과 팔이 하나인 골키퍼 등 7명이 팀을 이뤄 출전하며 전후반 25분씩이다.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고 박노해의 시 ‘길이 끝나면’은 노래한다.
절단장애 축구선수들은 길이 끝난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은 영웅들이다. 경기를 얼마나 잘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불편한 몸으로 축구를 한다는 자체가 도전이다. 올렉시의 높이 날아오른 모습은 그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불가능은 없다는 그의 말은 그들의 심장을 뛰게 했을 것이다.
절망 앞에서 과감히 일어서야 하는 것은 절단 장애인들만이 일이 아니다. 한 평생 사노라면 온갖 일이 닥친다. 실직을 하기도 하고, 재산을 날리기도 하며, 암에 걸리기도 한다. “내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며 분통을 터트려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고 답을 찾아야 한다. 인생의 새 지평을 열어줄 어떤 것, ‘축구’ 같은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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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