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은 남편의 대학 동창이다. 의료기계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그는 여름이면 한 주말을 우리 호숫가 별장에 와서 머물고 간다. 그날도 오기로 되어있는 시간이 되자 전화가 왔다. 조금 늦어지겠다고 했다.
늦게 도착한 그는 트렁크를 열어 오는 도중 거라지 세일에서 산 물건을 보여주었다. 옛날 등잔, 행주 등을 보여주면서 싸게 잘 샀다고 좋아했다. 이혼을 하고 혼자 사는 남자이니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며칠 후 우리는 인디애나 대학 동문회 발간지를 들쳐보는 순간 놀랐다. 첫 장에 마이클의 사진과 함께 그의 글이 소개되었다. 마이클이 신문방송학과 증축비용으로 700만 달러를 기증했다는 기사였다. 전 주에 만났을 때 그는 우리에게 그런 귀띔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그 정도의 돈을 가진 부자였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거라지 세일에서 남자가 남들이 쓰던 헌 물건을 뒤적거리는 것을 보았다면 누가 그 사람을 거액의 갑부라고 생각했을까.
그 후 그의 여자 친구는 내게 웃으며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그와 첫 데이트로 조촐한 동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돈을 지불한 뒤 다시 식당에 들어가 쿠폰을 잊고 사용하지 못했다고 쿠폰을 주고 몇 불을 환불받아 왔다고 했다. 그녀는 그야말로 짠돌이를 만났다고 한바탕 웃어댔다.
래리는 남편과 함께 인디애나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유능한 변호사였다. 졸업 후 그는 변호사 일을 접고 그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작은 사업을 이어받았다. 공장 바닥에 방수용으로 바르는 특수접착제 고무 풀을 만드는 회사였다. 회사라고 하지만 직원이 몇 명뿐인 작은 공장이었다.
그는 불고기를 좋아해 가끔씩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그럴 때면 그의 손톱은 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고 막노동자처럼 손이 거칠었다. 알고 보니 일거리가 많을 때 그 사람이 직접 직원과 함께 큰 공장 바닥에 풀칠을 하는 날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티셔츠 차림의 수수한 옷차림에 대학 풋볼 경기에 갈 때는 학생 기숙사에 들러 남아도는 학생 티켓을 싸게 사서 구경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그야말로 아끼며 절약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이곳 지역 신문을 보던 중 우리는 또 한번 놀랐다. 그의 사진이 크게 사회면 첫 장에 있었다. 기사인 즉 Fort Wayne에 있는 분교 퍼듀대학의 실내 운동장 증축에 래리가 600만 달러를 기부한다는 기사였다. 나는 또 놀랐다. 손톱이 닳도록 막일을 하며 한푼 한푼을 절약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거액의 금액을 학교에 기부했다는 사실이다.
조지는 인디애나 대학 졸업 때 총장 상을 받고 졸업한 수재이다. 다시 시카고 법대를 장학금으로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한때는 이곳 Fort Wayne 시 담당 변호사이기도 했고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저렴한 가격에 손님들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때로는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료로 서비스도 하는 정직하고 착한 변호사다.
그는 20년 된 혼다 시빅이라는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때로 털털거리며 고장이 나면 고쳐서 다시 타고 다닌다. 한국사람 친구는 가끔 그에게 농담을 한다. 자동차를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느냐면서 놀리듯 얘기한다. 그럴 때마다 조지는 아직도 잘 굴러가는데 한참은 더 탈 수 있다고 피식 웃으며 대꾸한다.
그들은 나에게 노골적으로 말한다. 자동차가 근사해야 변호사의 위상이 돋보이지 않겠느냐는 이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조지는 해마다 자동차 한 대 값을 인디애나 대학에 장학금으로 쓰라고 보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안다. 조지가 바로 내 남편이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근면하고 검소하게 사는 겸손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힘들게 번 돈을 남을 위해 기부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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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 인디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