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생활하면서 김치나 된장찌개 못지않게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이 자장면이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음식점에는 자장면이 없다. 타운의 여러 중국집을 돌아다니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메뉴판에서 자장면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주인에게 자장면이 없느냐 물어보면 그런 음식이 있는 것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자장면 뿐 아니라 짬뽕이나 우동도 없다.
술 마신 다음날 해물이 듬뿍 들어간 얼큰한 짬뽕을 먹으면 얼마나 속이 개운해지던가.
닭 국물에 해물과 계란을 풀어 가느다란 면과 함께 말아주는 담백한 우동 맛은 어떻고...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한국인의 국민음식은 자장면이다. 입가에 갈색 춘장이 묻는 것도 모른 채 번들거리는 굵은 면발을 후룩 후룩 소리 내며 입 안 가득 빨아들이면 고소한 춘장과 함께 볶아 다진 돼지고기와 가늘게 썬 오이, 콩 등 야채가 어우러져 입에서 살살 녹는다. 굵은 고춧가루를 술술 뿌려먹어도 좋고 반찬은 춘장에 찍어 먹는 양파 한 조각이나 단무지 한쪽이면 족하다.
자장면의 유래는 19세기 말 인천 제물포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항과 더불어 돈을 벌러 조선으로 건너온 중국인 노무자들이 일하다가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기위해 중국식 된장인 춘장에 삶은 국수를 비벼먹었는데 이것이 자장면의 효시로 알려지고 있다.
1905년께에는 제물포 거리에 ‘공화춘’이라는 중국음식점이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중국요리를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자장면의 맛을 한국인들 입맛에 맞게 현지화 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자장면이 된 것이다.
타운의 중국집에는 자장면이 없으니 자장면이나 짬뽕을 먹으려면 큰 맘 먹고 멀리 한인 타운까지 차를 몰고 가야하니 그도 번거로운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의 중국 음식점에서 드디어 자장면을 발견했다. 중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퀸즈 플러싱 메인스트릿에 갔다가 우연히 한 중국집에 들렸는데 메뉴 맨 위에 자장면이 있는 것이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두말없이 10달러를 내고 자장면을 시켰는데 맛이 한국식 자장면과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자장면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걸쭉하고 색깔이 진한 한국식 자장소스보다 조금 연한 소스에 떡고물처럼 잘게 다진 돼지고기를 오이 채, 콩 등 야채와 함께 수타면 위에 수북이 담아 내오는데 영락없는 자장면이었다.
주인에게 중국 어디출신이냐 물었더니 푸젠성(복건성)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살고 있는 화교중 상당수가 복건성 출신이라고 들었다.
‘란주납면’ 이란 상호가 말 해주듯 이 집에서는 밀가루 반죽을 길게 늘여 두 끝을 양손에 잡고 연신 바닥에 내리치면서 면발을 늘려가는 수타국수 방식을 쓰고 있다. 면발이 기계로 뽑은 것처럼 고르지는 않지만 매우 쫄깃쫄깃한 것이 특징이다. 그날 이후 자장면이 먹고 싶으면 가족과 함께 7번 전철을 타고 종점에서 내려 푸젠성의 원조 자장면 집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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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