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이 생에서의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다. 98세로 미국 역사상 최장수 전직 대통령인 그는 지난 수십년 누구보다 생산적인 노년을 보냈다. 하지만 구순 즈음부터 암 발병, 낙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더니 지금은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재발해 간과 뇌로 퍼진 상태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더 이상 병원치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보내며 호스피스 케어를 받기로 결정했다. 죽음을 담담히 맞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카터센터가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이 소식을 알리자 매스컴과 소셜미디어에는 이 특별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찬사가 줄을 이었다. 역사학자들, 인권운동가들, 민주 공화 양당 정치인들 그리고 일반국민들이 인류평화에 기여한 그의 공적을 기리고, 사랑과 연민으로 사람 돌보는 일에 앞장서온 그의 인도주의적 유산들에 경의를 표했다. 애틀랜타의 카터센터에는 방문객이 몰리고, 센터 웹사이트에는 그의 평안을 기원하는 메시지들이 쇄도하고 있다.
1980년 재선에 실패하고 초라하게 물러났던 39대 대통령이 이런 칭송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백악관을 떠나 고향 조지아, 플레인즈에서 새롭게 시작한 인생 2막이 그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퇴임 후 장장 42년이라는 세월이 그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바꿔놓은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드러나지 못했던 그의 진면목이 시간의 흐름을 타고 서서히 빛을 발한 덕분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대개 재임 시의 공적으로 평가받는 법인데 그는 퇴임 후의 역할로 존경받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건지, 무엇이 진정으로 승리하는 길인지에 대한 답이 그의 삶 안에 들어있다. 그가 삶을 통해 보여준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저앉지 말라는 것일 것이다.
1981년 1월 2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취임식 참석 후 귀향했을 때 그는 참담했다. 개솔린 가격 등 물가는 치솟고 이란 인질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임기 말 그의 국정 지지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레이건은 무려 44개 주에서 현직 대통령을 누르며 압승했다. 인기 최악의 실패한 전직 대통령으로 돌아오니 그를 기다리는 것은 부채였다. 워싱턴에 가있는 동안 돌보지 못한 땅콩농장이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었다.
최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난 56세의 그에게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땅콩농사 지으면서 조용히 노후를 보낼 것으로 짐작되었다. 게다가 실패의 아픔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하지만 그는 놀라운 회복력으로 벌떡 일어나 필생의 과업들을 시작했다.
82년 카터센터를 설립해 세계 평화와 공중보건을 개선하는 일에 앞장서고, 84년부터는 해비탯 포 휴매니티에 참여해 집 없는 가족들에게 집 지어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로잘린 여사와 나란히 안전모 쓰고 못질 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2002년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세계가 좁다하고 분쟁지역마다 찾아다니며 중재에 나선 헌신의 결실이다. 1994년 6월에는 북한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세계가 분쟁으로 어려울 때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를 찾은 이유는 신뢰감 때문이었다. 평소 그가 보여준 성실함, 정직성, 겸손함, 검소함 같은 덕목들이 그를 향한 신뢰감을 키웠다.
미국 대통령은 퇴임하면 세상 어디든 가서 풍요롭게 살 수가 있다. 연설 한번에 10만 달러대의 연설료, 대기업에 이름을 올리면 수백만 달러의 자문료는 기본이다. 하지만 카터는 퇴임 후 소박한 옛집으로 돌아갔다. 백악관 경험을 이용해 돈을 벌고 싶지는 않다, 부자가 되고 싶은 야망은 없다고 했다. 그는 욕심 없고 검소하다. 그것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의 힘이다.
대부분의 다른 정치인들과 그를 구분 짓는 또 한 가지는 정직성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치판에서 정직에 대한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 1976년 대선 당시 그는 “만약 내가 한번이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내게 투표하지 말라”고 단언했다. 거짓말을 하면 대통령 될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그는 못 박았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직후였던 당시 국민들은 그를 지도자로 택했다.
그가 겉치레와 탐욕의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비결은 신앙이었다. 신앙이 있어 그는 소명의식을 갖고 살 수 있었다. 노쇠해 찾아드는 질병, 다가오는 죽음에도 신앙이 있어 그는 담담할 수 있다. 2019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말했다.
“물론 기도를 한다. 하지만 살려달라는 기도는 아니다. 죽음을 맞는 바른 태도를 갖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부탁했다. 그러고 나자 죽음에 대해 완전히 편안해졌다. 죽을지 살지는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같은 조지아 출신의 민주당 정치인이자 목사인 라파엘 워녹 연방상원의원은 최고의 경의로 카터를 기렸다. “인생의 계절들을 통과하며 지미 카터 대통령은 위대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과 동행했다. 이 여린 과도의 시간 중에도 하느님은 분명 그와 함께 걷고 계신다.”
신실했던 한 삶이, 만인의 존경을 받으며, 저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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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