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모든 게 멈추고 바뀌면서 3년만에 성당 구역모임을 우리집에서 시작했다.
남편이 베네딕토로 영세를 받은 뒤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구역모임이었다. 그동안 나는 주로 새벽 미사를 다녔다. 어떤 이는 나를 혼자 사는 여자인줄 알았단다. 부활절, 성탄절, 야외미사, 연말파티를 할 때도 웬지 겉돌고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있다가 서둘러 돌아오곤했다. 이제는 남편 있는 마누라라며 모두 다 오라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리란다.
이게 얼마만인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못오는 이들도 있었지만 꽤 많은 식구들이 모여서 신이 났다. 소주, 맥주, 와인, 막걸리, 정종을 냉장고에 채워놓고, 나는 온갖 나물을 며칠전부터 불리고, 볶고, 부치고, 졸이고, 수육을 삶고, 개발에 땀나도록 일주일 내내 바쁘고 힘들었지만 희안하게 수술한 무릎도 많이 아프지 않았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엄마의 김치와 음식으로 잘 차려내는 나를 남편은 음식솜씨가 좋은줄 알고 여기 와서도 밥이나 함께 먹자며 온갖 아는 이들을 불러대서 처음에는 엄청 고생을 했다. 그렇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맛있는 음식에 식탐이 많고, 마누라 음식이 최고라는 팔불출 남편덕에 커다란 터키까지 구우며 솜씨가 좋다고 의기양양하지만, 아직도 엄마처럼 품질의 평준화로 언제나 맛있기는 틀린 것 같다. 그런 온갖 모임도 10년이 지나니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않고 귀찮아지더니 이제는 가족모임에서도 중요한 건 맞추고 기본적인 밥과 몇가지만 준비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서 예전엔 우리가 중심이 되어 아이들과 손에 손잡고 나타나 모든 일에 나섰지만 이번부터는 판이 바뀌었다. 서로 신분증을 까자며 서열을 정하는데 60이 넘으면 나이를 묻지 않는다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아쉬었다. 그동안은 우리가 무엇이든 엄청 잘 하는줄 알았지만 웬걸 지금 세대는 한수 위인 것 같다. 그냥 손맛으로 적당히가 아니라 계획을 세워 정확하게 하는데 음식맛도 좋고 일처리도 매끄러우니 이제 우리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경험에 따른 조언도 원할 때만 하면서 그들이 정해주는데로 힘닿는대로 도울 수 있으면 고마울 뿐이다.
그나마 우리 구역은 일 잘하고 부지런한 중년들이 중심이 되어서 고맙고, 게다가 이번에 5살 공주와 나타난 새 가족은 아이돌 스타 만큼 인기가 폭발하여 서로 잘 보이려고 아양을 부리면서 귀한 가족들에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나누고 싶었다.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린 우리는 손주들 보는것 같아서 더욱 기뻤다. 젊은 그들은 얼마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보면서 웃느라 에너지가 넘치고 무엇이든 못 할게 없이 든든하다. 평소에 점잖게 별 말이 없던 형제님들 남편은 유쾌한 넉살도 좋았고, 장단 맞춰주며 한술 더하는 자매님 와이프들도 볼수록 현명하고 귀하게 느껴지며 우리도 예전에 이렇게 예쁨 받은 것 같이 서로가 잘 지낼 수 있을것 같았다.
코스 요리가 끝나면 술 한잔 가지고 홀짝이는 서양인과 달리 우리는 역시 한국인답게, 후식으로 과일과 케잌까지 다 먹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여기 어묵 국물 좀 더 주시오! 하면서 상대방 취향은 상관없이 온갖 술을 따르고 권하는데 사양도 안하며 각자의 영세명을 걸고 마신다. 맛있게 먹으면 살이 절대 찌지 않고, 술 동무와 안주가 좋으면 다음날 머리가 안 아프다는 진리를 잘 따른다. 마무리로 음식을 지퍼백에 나누어서 다음 주 반찬 걱정을 덜어준다. 도무지 집에 갈 생각도 없고, 우리도 보낼 생각도 없었지만, 아쉬운 맘으로 밤늦게 헤어졌다.
다음날 반 쯤 감은 눈으로 새벽미사를 드리고, 볼일을 보고 온 남편은 대낮부터 다음날까지 온 집안의 천장이 날아가도록 코를 골고 씩씩하게 출근하면서, 구역모임이 정말 좋았다며 우리집에서 언제 다시 한번 하자기에 눈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흘겼지만, 사실은 나 또한 다음엔 뭘 만들어서 침 흘리게할까?하며 마음만 앞서는데 몸이 따라와 주길 바란다. 이렇게 여럿이 모이는게 재미있고 소중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역시 무엇이든 가끔씩은 없어져봐야 소중한걸 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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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 전 한국학교 교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