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네메시스는 징벌과 보복의 여신이다. 주제넘게 오만한 인간을 벌하고, 한 일도 없이 분에 넘치게 복을 받은 경우 이를 바로 잡는다. 너무 잘 생겨 오만하다가 여신의 벌을 받은 사람이 있다. 자기애의 상징인 나르시스이다. 자기를 연모하는 사람들을 차갑게 무시하는 그를 여신은 물가로 이끌었다. 물에 비친 미남, 자기 자신에 반한 나르시스는 꼼짝 않고 그대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영어단어 ‘nemesis’는 인과응보를 의미한다.
생로병사가 운명인 인간이 ‘로(老)’에 반기를 드는 것은 어떤가. 그것도 신의 영역을 넘보는 오만일까. 얼굴에서 나이를 지우려다 괴상한 모습이 되어버린 여성이 ‘인과응보’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수십년 대중음악계의 수퍼스타였던 마돈나(64)이다.
금년도 그래미 시상식이 끝나고 지난 한주 마돈나는 갑자기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1980년대 데뷔 이래 화제와 논란을 몰고 다닌 그였지만 이번에는 결이 좀 다르다. 후배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러 나온 그를 사람들이 못 알아본 것이었다. 피부를 너무 당겨 부자연스럽게 팽팽하고 잔뜩 부은 얼굴에, 머리를 뒤로 묶고 소녀처럼 양옆으로 두 가닥을 쫑쫑 땋아 내린 헤어스타일 등이 한마디로 괴이했다.
마돈나의 얼굴사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고, 비난과 조롱이 쏟아졌다. 이 세상 돈과 명성을 다 가졌던 스타가 왜 저렇게 되었나, 나이 먹는 두려움에 얼굴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음악으로 세상을 사로잡다가 그게 끝나니 마이클 잭슨이 되어버렸다, 너무 추하다 등.
평생 튀기 좋아했던 그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자신을 향한 비난은 나이차별과 여성혐오의 결과라며 후세대 여성들을 위해 기꺼이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나이든 얼굴 뜯어 고치면서 나이차별 운운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비판이다. ‘머티리얼 걸’의 노후가 가엽다.
몸의 근육들은 골격 여러 군데에 탄탄하게 붙어서 기능을 한다. 반면 얼굴근육은 두개골에 최소한으로 붙어 있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말하고 웃고 찡그리고 놀라는 온갖 표정들을 자유자재로 할 수가 있다. 표현의 자유이다. 대신 근육 훈련을 아무리 해도 얼굴근육은 탄탄하게 끌어올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 뼈대의 지지를 받지 않는 얼굴근육은 나이와 중력의 무게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평생 지은 미소만큼 눈가에 주름이 생기고, 고민하고 사색한 만큼 미간 주름이 생기며, 이마주름 팔자주름이 깊어지고, 피부는 늘어진다. 거울 앞에서 마주한 늙고 낯선 모습에 한번쯤 서글퍼지는 것이 늙어가는 정상적 과정이다. 노화를 늦추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더 이상 나는 젊지 않다”는 사실이 분명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외모 지상주의, 젊음 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늙은 외모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다. 손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보톡스 주사나 필러 필링 레이저 등 시술, 눈 코 입을 손보고 얼굴과 목 피부를 팽팽히 당기는 수술 등 미용성형은 더 이상 터부가 아니다. 기술은 해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면 “누구더라?” 싶은 때, 누군지는 알지만 너무 낯선 때가 심심찮게 있다.
연예인들은 외모가 커리어에 직결되는 만큼 성형이 특히 흔하다. 평생 세계적 선망의 대상으로 화려하게 살았던 마돈나가 주름지고 처진 얼굴 앞에서 얼마나 고민이 컸을 지는 이해가 된다. 여배우들의 성형은 일상사여서 데미 모어 같은 경우 성형수술에 50만 달러를 썼다고 한다. 늙음을 거부하려는 시도들이다. 젊음이 떠나면서 남긴 텅 빈 마음, 심리적 허기를 채우려는 시도들이다.
그 반대편에는 노화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있다. 꽃 피고 꽃 지듯, 인간도 늙고 결국 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2030의 발랄하고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있다면, 6070에게는 여유롭고 푸근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우아함이다.
한국의 나이든 여배우들은 대체로 성형 흔적이 없어서 반갑다. 아마도 가벼운 시술 정도로 피부 관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여배우들 중에도 주름과 백발에 당당한 스타들이 있다. 제인 폰다(85), 다이앤 키튼(77), 메릴 스트립(73), 제이미 리 커티스(64세), 섀론 스톤(64), 앤디 맥다우얼(64), 에마 톰슨(63) 등은 여전히 친숙한 얼굴 그대로이다.
이들이 전혀 얼굴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섀론 스톤 같은 경우는 2001년 뇌졸중 후 얼굴을 되살리려 300대의 보톡스 주사와 필러를 주입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로는 잔주름 눈가주름 개의치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레드카펫에 선다.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이 훨씬 기분 좋다는 것, 성형으로 한번 망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노화라는 자연현상과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나이는 감추고 덮으려 할수록 드러나는 법. 받아들이면 당당해진다. 노년에 당당함만큼 귀한 아름다움은 없다. 평생의 경험과 감정과 지혜가 빚어낸 깊은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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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