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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공과 바이든의 한계

2023-02-1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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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메이 풀러는 가장 운 좋은 여성의 한 명이다. 1874년 버몬트 러들로에서 태어난 그녀는 법률 사무소 직원 등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은퇴하기 2년 전인 1937년 소셜 시큐리티란 제도가 생겼다.

1939년 65세가 된 그녀가 낸 소셜 시큐리티 세금은 총 24달러 74센트(2021년 돈으로는 436달러)였다. 미 역사상 첫번째 소셜 시큐리티 수혜자인 그녀는 그 후 100세까지 살며 총 2만2,888달러 92센트를 받았다. 투자로 치면 900배가 넘는 엄청난 수익을 올린 셈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소셜 시큐리티를 타는 사람은 자기가 부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는다. 중립적인 어번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10년에 은퇴한 평균 소득(연 4만4,600달러)의 둘 다 일하는 2인 가구의 경우 2012년 달러로 72만 달러를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세금으로 냈지만 총 수혜액은 96만6,000달러에 달한다.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가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어차피 자기가 낸 돈을 자기가 타 가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항변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자기가 낸 돈은 이미 당시 은퇴한 사람들이 받아 갔다. 지금 은퇴해 받는 돈은 내가 옛날에 낸 돈을 투자해 불어난 것이 아니고 지금 일하는 근로자 페이에서 떼어낸 것이다.

1937년 소셜 시큐리티가 처음 생겼을 때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57, 여자 62세였다. 대부분은 소셜 시큐리티를 탈 나이 전, 혹은 탄 지 몇 년 안에 죽었고 이 세금을 낼 근로자들은 수혜자의 40배가 넘었다. 그러던 것이 60년대 이 비율이 4배로 줄더니 현재는 3명이 채 안 된다. 2030년이 되면 이 숫자는 2명으로 줄어든다.

이에 반해 미국인의 평균 수명은 지난 90년간 꾸준히 증가해 이제는 남자 74, 여자 80세로 늘었다. 이는 평균 수명으로 어려서 죽은 사람들까지 포함한 것이기 때문에 일단 65세가 된 사람은 이보다 훨씬 오래 사는 게 보통이다. 주위에서 80, 90은 물론이고 100세를 넘긴 사람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체제가 그대로 존속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메디케어 기금은 불과 5년 뒤인 2028년, 소셜 시큐리티는 11년 뒤인 2034년이면 적자로 돌아선다. 정치인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 때가 오면 자동적으로 메디케어는 10%, 소셜 시큐리티는 25% 정도 혜택이 줄게 된다(2022년 소셜 시큐리티 신탁인 보고서).

이는 새삼스런 뉴스도 아니어서 오래 전부터 그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리고 이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던 사람의 하나가 당시 연방 상원의원이던 조 바이든이었다. 바이든은 1980년대부터 연방 적자와 국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소셜 시큐리티를 포함한 모든 연방 예산 지출의 동결을 주장했다.

그는 1984년 인플레와 연동된 소셜 시큐리티 자동 인상 동결을 지지하는가 하면 1988년에는 절대로 깎지 못하는 소셜 시큐리티와 국채 이자 부담 때문에 교육과 푸드 스탬프 등 다른 예산이 잘려나간다며 거듭 소셜 시큐리티 삭감을 주장했고 2018년까지 같은 얘기를 되풀이했다. 2020년 대선 민주당 경선 때 버니 샌더스가 바이든이 사회 복지 혜택을 줄이려 했다고 공격한 것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던 바이든이 지난 주 국정 연설에서는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등을 신성 불가침의 영역으로 규정하고 일부 공화당원들이 이를 깎으려 한다고 공격했다. 공화당에서 “거짓말장이”라고 외치자 바이든은 이 문제에 대해 모두 의견일치를 봤다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 문제는 웃고 넘어간다고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한 때는 아들 부시도, 버락 오바마도 사회 복지 프로그램이 이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고 해결하려 노력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혜택을 줄이거나 세금을 늘려야 하는데 어느 쪽도 인기 없는 일이다. 원론에는 찬성하다가도 2년마다 찾아오는 선거를 생각하면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소셜 시큐리티에 의지해 근근히 살고 있는 노인들을 벼랑으로 밀어 떨어뜨리자는 이야기냐’고 누군가 공격하면 아무도 대꾸를 못하는 게 현실이다.

프랑스에서는 은퇴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두 살 더 올리는 연금 개혁을 시행하려다 수백만명이 길거리로 뛰쳐 나와 한 달째 난리고 한국에서는 연금 개혁을 놓고 초안조차 마련하지 못한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바이든은 2020년 대선에서 날사기꾼 도널드 트럼프를 합법적으로 권좌에서 축출하고 2022년 러시아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돕는 큰 공을 세웠지만 미국의 장래를 위협할 사회 복지 개혁은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은퇴했거나 앞으로 은퇴할 모든 미국인들에게 고통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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