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이스카웃에서 27년간 자원봉사를 했다. 두 아들을 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작은 아들 글렌을 위해서였다. 글렌은 정신발달 장애인이다. 보이스카웃은 글렌이 격리되거나 보호된 벽을 넘어서 정상적인 애들과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글렌과 나는 쌍둥이 스카웃이다. 글렌이 하는 모든 장소나 하는 일에는 내가 항상 같이 있었다. 돌아보니 그 시간은 내게 많은 즐거움과 보람을 주는 뿌듯한 추억의 시간이 되었다. 더불어 나의 두 아들은 보이스카웃에서 가장 영예스러운 이글 스카웃이 되었다.
보이스카웃은 열살 반부터 시작하여 18살까지 계속되는 과외활동으로서 신뢰, 충성, 도움, 친절, 공손, 절약...등 열두 개의 규율을 지키면서 모토는 ‘항상 준비된’ 자세를 키우고 하루에 좋은 일 한 가지씩 하는 것이 기본방침이다. 물론 이런 목표는 따분한 이론보다는 캠핑이나 사회 봉사활동 같은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미도 있고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100명에 2명 정도만 이글 스카웃이라는 마지막 단계에 도달한다. 그 긴 과정을 통해서 청소년들은 바람직한 인격형성이나 삶에 필요한 기술, 인간관계 그리고 마지막 리더십의 스킬을 익히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전자게임이나 인터넷 등에 매료된 남자애들이 집 밖에서 자연을 즐기며 친구를 만드는 균형 잡힌 삶을 준비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기억하는 수없이 많은 경험 중에 늘 재미있었던 일은 캠핑이다. 어느 해 여름 우리는 등산을 계획했다. 평평한 인디애나를 벗어나 스모키 마운틴 등반일정을 잡았다. 저녁노을 무렵 도착한 우리 일행은 각자 준비해온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지펴 저녁을 지었다. 분단대로 나누어 계획한 저녁 메뉴는 다 다르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다음날 일정을 알리고 간단한 캠프송을 부른다. 늘 그랬듯이 분단별로 준비해온 촌막극도 벌인다. 웃음으로 이어지는 즐거운 밤이다.
다음날 우리는 산봉우리를 향해 등반에 나섰다. 하루에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여서 배낭은 비교적 가벼웠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솔바람이 있어도 힘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산중턱을 오르는데 문제가 생겼다. 글렌이 하산을 하는 것이었다. 설득이나 으름장은 통하지 않는다. 고집불통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리도 아프고 땀이 나고 힘든 산길을 구태여 올라야하는 이유가 없다.
우리는 대원을 모아 긴급회의를 했다. 그들은 계획한 등반을 해서 배지를 획득해야 했기에 중도 하차할 수는 없었다. 잠시 후 그들은 기발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글렌이 좋아할 만한 것을 제공하고 글렌 또한 그들의 원하는 것을 해주기로 한 타협이 만들어졌다. 글렌은 늘 엄마 텐트에서만 잔다. 몸은 정상이라 걷는데 이상은 없어도 정신발달 장애인이니 그들과 재미있는 얘기를 주고받는데 많은 제한이 있다.
누구도 그들의 텐트에 글렌을 초청하지 않는다. 그날 글렌은 그들 텐트에서 자도록 초청을 받았다. 그 대신 글렌은 정상까지 그들과 함께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즐거운 제안에 글렌은 선두로 나서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왕따나 협박이나 모른 채 무관심으로 방치하지 않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모두가 성공한 해결책이었다.
나는 그들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무사히 하산한 나는 그들에게 큼직한 아이스크림을 선물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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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인디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