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41년 12월7일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중이던 미 태평양함대를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했다. 이 공격으로 미군 자산이 대량 파괴되고 민간인 수천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미국이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미국에 거주하던 수많은 일본계들이 강제 격리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일본계 격리정책이 정당화되기에 가장 일조했던 이유는 당시 피격당한 일본군 파일럿이 하와이 근처 니하우섬에 추락하며 벌어진 사건 때문이었다. 하와이 원주민들이 그를 체포하려 하자 섬에 거주하던 일본계 미국인들이 그의 탈출 시도를 도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일본 군인은 원주민들에게 잡혀 살해당했다. 하지만 미 주류 언론은 일본계 미국인들의 충성심을 의심해야 한다는 논조의 글을 계속 유통시켰고, 결국 일본계 2, 3세들도 일제를 조롱하는 욕인 잽스(JAPS)나 다름없다고 취급받으면서 강제수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일본계 미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려는 시도도 많았다. 격리자들 중에는 적지 않은 수가 미군에 자원했고, 무공을 세운 수천명의 일본계 참전용사들에게는 의회 명예훈장이 수여되었다. 비록 수십년이 흘러 수여하게 된 명예훈장이지만 이들 일본계 미국인들의 헌신으로 일본계 강제수용이라는 무리한 정책에 대해 미국은 영원히 마음의 빚을 지게 되었다.
최근 미국과 중국간에 마찰을 일으켰던 중국의 ‘스파이 풍선’이 결국 격추됐다. 미 국방부는 지난 4일 캐롤라이나 해안에서 중국 풍선을 격추한 후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군 당국은 이 정찰 풍선을 영토 상공에서 격추하면 민간인에 피해를 줄 위험이 커서 해안으로 날아갈 때까지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미 정부와 여야 정치권 모두 한 목소리로 이 일을 ‘스파이 풍선(Spy Balloon)’ 사태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미군이 전투기를 동원해 대서양 상공에서 비행체를 격추한 것은 전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풍선의 잔해에서 군사정보 수집 목적의 장비 탑재가 밝혀진다면 분명 전쟁도발 사건이다. 미국이 가장 무서운 때는 두말할 것도 없이 여야가 한 목소리로 USA를 외치면서 적국 타도를 외칠 때이다.
문제는 중국의 엉뚱한 반응. 미국의 ‘명백한 과잉 대응’이라는 것이다. 스파이 풍선이 처음 발견된 몬태나주 빌링스는 근처 맘스트롬 공군기지에서 얼마 안 되는 거리, 그곳에 떨어져 있었으니 우연치고는 너무 가까운 거리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예정된 중국 방문을 전격 취소, 미중 관계는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닉슨 대통령의 첫 방중 결과물인 1972년 상하이 코뮈니케로 시작해서 1979년 미중 수교에 이르러서는 미중 사이에 하나의 중국, 즉 ONE CHINA 원칙이 음으로 양으로 결정되었다. 미국이 대만을 중국의 영토로 인정하는 대신 중국은 대만 정부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원칙이다.
미국은 그때부터 대만과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만에 무기를 엄청나게 팔게 되었다. 그렇게 미중관계가 밀월을 유지해 왔지만, 이제 두 나라는 적대적인 관계로 변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에 사는 동양계들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걱정이다.
이번 풍선 격추 사건에 대해 아시아계 정치인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공식적으로 중국 공산당에게 강력 규탄하는 서한과 결의안을 상정할까. 아니면 쥐 죽은 듯 모르는 척 지나가려 할까.
아시안 아메리칸들이 미국내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살려면 말로만 주류사회 진출을 외칠 것이 아니라 미국을 해치려는 중국의 노골적인 침략 시도에 대해 무언가 확실하게 대응하는 제스처가 필요하다. 그래야 아시안 혐오 범죄에 대한 주류사회의 진심어린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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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