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애프터 러브’(After Love) ★★★★ (5개 만점)
▶ 무표정한 상실의 슬픔과 비밀을 파고드는 호기심…자신의 육체의 무기력감을 묵직한 무게의 연기력 보여
메리(가운데)가 조문객 사이에 앉아 무표정한 모습으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죽은 남편의 이중생활을 캐들어 가면서 자신의 결혼생활과 정체성 그리고 삶 전체를 탐구하게 된 미망인의 여정을 그린 준수한 드라마로 사려 깊고 민감한 작품이다. 파키스탄 계 영국 감독 알렌 칸(각본 겸)의 데뷔작으로 평범한 멜로드라마가 될 얘기를 명상 하듯이 차분하게 다루면서 플롯의 날줄씨줄을 조화롭게 엮어 감동적인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특히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이 주인공인 미망인 메리로 나오는 영국배우 조앤나 스캔란의 출중한 연기. 거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상실의 슬픔과 남편의 비밀을 파고드는 호기심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자신의 육체에 대한 무기력감을 묵직한 무게로 보여주는데 과연 괄목할만한 연기다.
영화는 처음에 영국 남쪽 해안의 흰 절벽으로 유명한 도버에 사는 파키스탄 계 영국인 아메드와 그의 영국인 부인으로 회교도가 된 메리의 평범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삶을 짤막하게 보여준다. 아메드는 도버와 프랑스 북쪽의 도시 칼레를 운항하는 여객선의 선장이고 메리의 회교도 이름은 파티마다.
곧 이어 아메드의 사망과 함께 아메드의 집으로 조문객들이 찾아온다. 조문객들은 다 회교도들인 것을 보면 메리가 아메드와 결혼하기 위해 큰 희생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메리가 남편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어느 프랑스 여인의 신분증과 함께 ‘G’라는 이름으로 남편의 셀폰에 남긴 이 여인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메리는 이 여자를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남편이 선장이었던 배에 오른다. 메리는 남편 생존 시 매일 하오 4시면 도버 절벽 위에 서서 남편이 모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그 배에 타 도버 해안을 바라보니 절벽의 한 부분이 무너져 내린다. 이는 메리의 삶의 붕괴를 상징한다.
메리가 남편의 여인의 집 앞에서 서성일 때 외출했던 여인이 돌아와 머리에 베일을 쓴 메리를 자기가 요청한 파출부로 착각, 메리를 집 안으로 불러들인다. 메리는 시치미를 뚝 떼고 파출부 노릇을 시작한다. 프랑스 여인의 이름은 즈느비에브(나탈리 리샤르)로 즈느비에브에겐 10대의 아들 솔로몬(탈리드 아리스)가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메드와 즈느비에브의 관계가 매우 오랜 것을 알 수 있다.
메리는 즈느비에브의 파출부 노릇을 하면서 남편의 이중의 삶에 가까이 접근하고 아울러 즈느비에브라는 여인의 정체를 밀접하게 감지한다. 즈느비에브는 약간 비만한 메리와 달리 청바지를 입은 날씬한 금발 여인. 메리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비만한 맨살 몸을 관찰하면서 짓는 안쓰러우면서 아울러 체념하는 듯한 표정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짓누른다. 메리는 이런 육체적 차이 뿐 아니라 동서양의 문화적 간극마저 느끼게 된다.
메리는 즈느비에브의 집안을 말끔히 청소하고 솔로몬에게 음식까지 만들어주면서 이 집의 한 식구처럼 되어간다. 이로 인해 메리와 즈느비에브는 짙은 인연의 줄을 맺게 된다. 영화는 두 여인의 인연의 실타래를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재미있게 진행되는데 칸 감독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절제되고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침착하고 검소한 작품이지만 안으로는 강렬한 폭발력을 지닌 작품으로 스캔란의 안으로 내려 누르는 과묵한 연기는 상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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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