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은행이 발송한 자동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은행이 설치한 알고리즘이 필자의 데빗카드에 찍힌 구입내역을 수상히 여긴 것이다. 메시지에는 해당 물품의 구입 여부를 확인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합리적인 세계에서 연방부채한도 상향조정은 은행이 발송한 자동문자 메시지에 “1”을 찍어 본인이 해당 물품을 구입했음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한 절차로 간주된다.
부채한도 상향은 대통령에게 멋대로 지출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꼼수가 아니다. 단지 정부로 하여금 부채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고 소셜시큐리티 수령자들에게 수표를 발송하는 등 국가의 채무이행 약속을 지키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의회의 승인을 받은 이 같은 지급 약속이 세금과 기타 국고 수입 예상액을 초과하게 되면 차액 중 일부는 차입을 통해 충당해야 한다. 이는 정상적인 국고금 운용절차로 금융시장은 기꺼이 필요한 자금을 빌려준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의 특이한 예산절차에 따라 재정 담당부서인 재무부는 이미 의회를 통과한 지출법안의 예산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부득이 부채를 일으켜야할 경우 또 다시 의회의 승인을 구해야 한다.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시절 대규모 차입을 전혀 문제 삼지 않았던 공화당이 태도를 바꿔 기이한 예산 절차법 조항을 행정부와 여당을 압박하는 무기로 활용하려 든다는 점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번 주 부채한도에 도달하지만 회계 조작을 통해 향후 몇 개월간 위기를 지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임시방편이 소진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화당은 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묘안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채무이행 약속을 선별적으로 지켜 피해를 제한한다는 주장이지만 이는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 설사 이자 지급을 이어갈 수 있다하더라도 투자자에서 공급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미국정부의 채무상환 능력을 믿어도 될지 반신반의하게 만들 것이다.
마국의 국채는 세계 시장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다. 최고의 안전자산이자 가장 확실한 담보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만약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면 글로벌 금융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 (비슷한 선례가 있다. 2020년, 코비드-19로 시장이 동요하자 투자자들은 다투어 채권을 내던지고 현금으로 갈아탔고 채권 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부채 위기는 그저 나쁜 정도가 아니라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런데도 민주당은 공화당의 요구에 굴복해야할까? 아니다. 의회의 양원 가운데 하나만을 가까스로 장악한 정당이 전혀 인기가 없는 전국 차원의 정책을 강요해선 안 된다.
만에 하나 바이든 행정부가 원한다 해도 실제로 백기를 들 수 있을지조차 확실치 않다. 과거 국가 부채한도를 이용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협박했던 공화당내 티파티 그룹은 지금의 극우성향 공화당 의원들에 비하면 대단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공화당은 일관된 요구사항도 갖고 있지 않다. 의총 멤버들 가운데 상당수는 오히려 국가적인 위기를 원한다. 민주당 행정부 아래서 “세계가 불타는 광경을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안은 있을까? 필자는 세 갈래 길이 있다고 본다.
첫째,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이었을 때 채무한도를 올리지 않은 것은 뼈아픈 실책이지만 아직도 ‘입법’ 해법이 남아있다. 민주당은 공화당 지도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면책청원’을 상정함으로써 부채한도 상향조정 표결을 강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제정신이 박힌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가 있어야하고 시간도 필요하지만 시도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둘째, 부채한도를 우회하는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액면가치가 1조 달러인 백금 주화, 즉 플래티넘 코인을 만들어 미국의 연방 중앙은행인 연준에 예치한 후, 이렇게 만들어진 은행계좌에서 기금을 인출해 사용하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건 거의 확실한 합법적 해법이다.
또 다른 옵션은 기존의 부채 만기가 도래할 때 이를 대체할 ‘프리미엄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프리미엄 채권의 액면가를 기존 채권의 가격과 동일하게 만들면 공식적으로 부채를 늘리지 않아도 되지만 금리가 높기 때문에 명목가치보다 더 많은 채권을 팔아야 한다.
물론 이들 모두는 재정적 편법이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건가? 특이한 절차법 조항을 무기화한 극단적 파괴주의자들이 음모를 무산시켜 재정파국을 피해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
마지막으로, 헌법적 옵션도 생각해 볼만하다. 제 14차 수정헌법은 공공부채의 타당성을 “문제 삼지 말라”고 못 박아놓았다. 채무불이행보다 부채한도를 무시하는 것을 더욱 합리적이라 여기는 근거다.
다른 한편으로 백악관은 양립이 불가능한 요구에 직면해 있다. 적절한 절차를 밟아 제정된 법을 통해 의회는 연방 지출과 세금의 수준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그러나 하원은 기존 법을 준수하는데 필요한 기금을 마련할 수 없다고 대통령에게 으름장을 놓을 태세다. 부채한도를 올리지 않으면 바이든 대통령은 최소한 몇 가지 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채한도를 무시하는 것은 “최소한도의 비합헌적” 옵션이다.
민주당은 과연 어떤 옵션을 선택해야 할까? 필자는 이들 모두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공직자들이 어리석거나 품위 없어 보이는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경제 테러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너무 극단적인 얘기처럼 들리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인위적 채무위기는 경제 테러에 해당한다. 민주당 행정부 아래서 “세계가 불타는 광경을 지켜보기” 원하는 공화당의 위협을 물리치려면 무슨 일이건 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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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