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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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다이닝’의 미래

2023-02-01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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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타운 6가 길에 있는 노르만디 호텔은 유서 깊은 건축물을 새롭게 재단장한 부티크 호텔이다. 이 호텔에는 2개의 식당이 입점해있는데 ‘카셀스’ 햄버거와 ‘르 콩투아’(Le Comptoir)가 그것이다. 하루 종일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카셀스’와 달리 간판도 없는 ‘르 콩투아’는 주 3일 저녁에만 문을 열고 예약손님 10명에게만 8코스 디너를 서브하는 초미니 파인 다이닝(fine dining) 레스토랑이다.

‘카운터’라는 뜻의 식당이름대로 이 곳에서는 손님들이 조그만 주방을 둘러싼 카운터에 앉아서 ‘미셸린 셰프’ 개리 메네스가 바로 코앞에서 만들어주는 음식을 차례로 받아먹는다. 메뉴는 주로 채식, 셰프가 직접 농장에서 재배하는 각종 야채과일들로 산해진미를 요리해낸다.

6가 길을 지날 때마다 힐끗힐끗 보면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르 콩투아’에서 마침내 지난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목금토 오후 7시30분 딱 한번 열리는 좌석에 예약이 되었을 때 우리는 굉장히 운이 좋다며 기뻐했다. 팬데믹 전까지 이곳은 하루 2회 서브하는 10개 좌석에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흥분과 기대를 품고 식당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깜짝 놀라 잠시 멈칫했다. 카운터에 앉은 손님이 우리 포함 4명뿐이었다. 그리고 셰프와 보조요리사 2명이 4명의 고객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음식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각 코스에 대한 셰프의 ‘강의’와 예술 같은 플레이팅도 근사했다. 하지만 서브 받는 내내 왠지 미안하고 민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식당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올해 초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최고급식당 ‘노마’(Noma)가 2024년 말에 문을 닫는다고 선언했다. 세계 요식업계는 발칵 뒤집어진 듯했고, 주류 언론 모두가 호들갑스럽게 이른 ‘부음’을 전했으며, 유명 푸드 칼럼니스트들은 앞 다퉈 그 곳에서의 경험을 추억하고 찬미하는 기사들을 써댔다.

‘노마’는 파인 다이닝의 원조급 레스토랑으로, ‘세계 50대 식당’ 순위에서 거의 매년 1위에 랭크됐고, 5년 연속 미셸린 3스타를 받은 유일한 식당이다. 각국의 부자 미식가들이 일등석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먹고 오는 이 곳에서는 3시간 동안 20코스를 일인당 500달러에 서브한다. 예약이 극도로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노마’의 셰프 르네 레드제피(Rene Redzepi)는 지칠 줄 모르는 음식에 대한 열정과 창의성으로 존경받아왔다.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개발해 끊임없이 기발한 요리를 소개함으로써 가장 독창적인 북유럽 쿠진의 선구자로 떠올랐고, 지난 20년 동안 그를 모방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전 세계에서 우후죽순 생겨났다. 미식가들의 순례지요, 셰프들의 성지였으며, 여기서 훈련받았다고 하면 투자자들이 무조건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은 치명적으로 힘겨운 싸움의 연속이다. 미셸린 스타 셰프들의 자살이 잇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으로, 자신이 세워놓은 최고 기준을 뛰어넘어 항상 혁신을 이뤄내야 하는 중압감이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 스타 셰프들에게 그보다 더 큰 타격이 바로 코비드 팬데믹이었다. 요식업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특별히 투고와 배달이 불가능한 고급식당들은 그저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고난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많은 코스요리 식당들이 폐업했고, 다시 문을 연 곳들도 ‘르 콩투아’처럼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레드제피 역시 20년만에 처음으로 집에서 쉬게 되면서 세계 최정상의 파인 다이닝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메뉴개발도 힘들지만 100여명의 직원을 진두지휘하면서 재정적으로, 감정적으로, 인간적으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고백이다.


지난 20~30년은 파인 다이닝의 전성기였다. 유명 셰프가 제공하는 테이스팅 메뉴, 거기에 매치하는 와인 페어링까지 한끼에 수백 달러하는 식사가 여기저기서 넘쳐흘렀다. 그러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이 변했고, 사회 경제 문화 다방면에서 겉치레보다 본질을 우선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 되었다. 한마디로 거품이 빠졌다고 할까? 경쟁적으로 최고급 메뉴를 선보이던 식당들도 이제 컨셉을 달리하지 않고는 생존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 요식업계의 진단이다.

일인당 175달러인 ‘르 콩투아’는 예약과 동시에 크레딧카드에서 서비스 차지까지 (환불 불가능한) 460여 달러를 빼내갔다. 그리고 당일 식사에서 몇가지 옵션을 택하고 콜키지(65달러)까지 더하자 가져간 와인 빼고도 두 사람이 쓴 식사비는 700달러였다.

이 정도는 ‘껌값’인 것이, 나파 밸리에서 유명한 ‘프렌치 런드리’는 9코스에 350달러, 콜키지는 200달러나 한다. 와인을 가져오지 말라는 얘기다. LA의 고급식당 ‘프로비던스’는 8코스에 295달러, 일식당 ‘엔나카’(n/naka)의 경우 13코스 310달러다. 여기에 와인 페어링을 하고 택스와 팁까지 합하면 한 사람당 6~700달러는 써야한다.

한때 이런 코스메뉴를 선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잘난 체도 좀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얼마전 나온 영화 ‘메뉴’(Menu)는 파인 다이닝의 끝을 보여준다. 두당 1,250달러, 극도로 정교하고 예술적인 플레이팅에 넋을 놓고 침을 흘리다보면 한계의 종착역에 다다른 셰프가 벌이는 엽기적인 죽음의 게임에 다함께 빠져들게 된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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