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 - 국수와 한국인

2023-01-31 (화)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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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국수를 좋아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스파게티를, 일본인은 우동을 즐기지만 한국인의 국수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짜장면도 순수한 중국 음식이 아니라고 한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연구하다 보니까 짜장면이 나온 것이다.

은퇴하니까 점심 사겠다는 사람도 없다. 은퇴란 잊혀진 세대가 되는 것이다. 만일 기적적으로 점심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서슴 없이 “갈냉이 먹고 싶소”하고 대답할 거다. 갈냉이 무엇이냐고 하면 “갈비 냉면”을 줄인 말이 갈냉이다. 갈비 한대 뜯고 맛보기 냉면 한 그릇이면 나에겐 최고의 식사이다.

국수의 맛은 역시 긴 데서 온다. 부숴진 라면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국수의 맛과 길이의 함수관계를 이해할 것이다. 함흥냉면쯤 되면 끊어지지가 않는다. 도중에 숨을 돌이키고 잠깐 쉰 뒤에 계속 씹어야 한다. 평양냉면이 유명해서 북한에서는 중국에 까지 냉면집을 냈다는데 나도 한번 먹고 싶다.


국수들은 특색이 있고 한국인은 국수의 특색을 닮았다. 콩국수는 한국인처럼 구수하다. 칼국수는 소박하여 역시 한국인의 기질과 같다. 모밀국수는 덤덤하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는 냄비국수는 다정하여 역시 한국인을 닮지 않았는가!

대중가요 ‘김삿갓’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열 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 읊고 떠나가는 김 삿갓” 방랑 시인 김 삿갓은 팔도강산을 홀로 여행하며 밤에는 어느 집 문간방에서 밥 한술 얻어 먹고 하룻밤 자고, 떠날 때는 그 집에 시 한 수를 선물하고 정처 없는 길을 다시 출발한다. 김 삿갓의 무전 유람을 문인은 이해를 할 수 있다.

글 쓰는 것과 돈과는 관계가 없다. 보통 내가 책을 많이 냈다고 하면 “인세가 많겠네요”하고 말한다. 그러나 나도 그렇고 문인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문학은 돈벌이가 아니고 예술 추구이다.

요즘은 각종 국수가 인스턴트 식품으로 나와있어 편리해졌다. 아내가 없어도 5분이면 각종 국수를 먹을 수 있다. 한국인을 위하여 쌀국수까지 나왔다. 끓일 것 없이 뜨거운 물만 붓고 3분 있으며 준비 완료이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지 모른다.

짜장면을 사 오면 짜장이 너무 많아 절반은 국수와 함께 먹고 절반은 짜장밥으로 먹어도 맛있다. 쫄깃쫄깃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쫄면이라는 것도 나왔다. 라면은 일본에 사는 재일 교포가 발명하여 성공하고 한국에까지 들여왔다고 한다. 나도 미국에 오기 전 새벽에 영어학원에 다니느라 라면 한 개 얼른 끓여먹고 집을 나섰다.

뉴욕에서 목회할 때 홀로 자취생활을 하는 독신 학생들이 많았다. 심방 가면 라면을 끊여준다. 그릇이 없어 나는 사발에 제대로 먹고 학생은 냄비 뚜껑에 라면을 덜어먹었다. 고생하던 시절 이야기지만 역시 재미있었다.

일본에 가면 서서 먹는 식당들이 있다. 벨트가 지나가는데 여러가지 음식이 보이고 물론 라면도 있다. 집어서 얼른 먹으면 빈 그릇을 보고 계산이 나온다. 뉴저지 포트리에는 로봇 라면이나 우동을 배달해 준다. “고마워요”하고 말하면 로봇이 유창한 한국말로 “천만에요. 저희 가게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고 말한다. 세상 달라졌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세상이 되었다.

옛날 한국에는 결혼식에 온 축하객들에게 국수 한 그릇씩 대접하는 습관이 있었다. 비용이 싸서가 아니라 국수처럼 길고 오랜 세월을 잘 살라는 축복의 의미가 있었다.

<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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