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 ‘나’에서‘우리’가 될 때

2023-01-30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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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 육군에 입대한 것은 1941년 9월이었다. 몇 달간 기초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이 기초 훈련이란 다른 병사 수십 명과 촘촘히 대열을 짜서 함께 훈련장을 행군하는 것이었다. 처음 나는 이 행군 훈련이 그저 시간을 때우는 한 방법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다 같이 하나가 되어 오랫동안 뛰다보면 어느덧 모종의 감정이 솟아오르는데, 그것은 진정한 행복감이 온몸 구석구석에 퍼지는 느낌이었다.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커지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집단의식에 참여함으로써, 내 몸이 전점 부풀어 오르고 그리하여 내가 실제보다 훨씬 더 커지는 듯 느껴지는 것이다.“
(윌리엄 맥닐의 ‘Keeping Together in Time’ 중에서)

인도의 위대한 성자 썬다싱(Sundar Singh)이 심한 눈보라가 부는 어느 날 티베트인과 함께 히말라야 산맥을 넘게 되었다. 한참 산길을 걸어가는데 눈 비탈 아래에서 의식을 잃고 신음하고 있는 한 나그네를 발견하게 되었다.


썬다싱은 함께 가던 티베트인에게 그 사람을 함께 부축하여 마을로 데려가자고 간청했다. 하지만 티베트인은 혼자서도 살아남기 어려운 형편에 남을 돕는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일축하고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자기의 길을 갔다.

썬다싱은 눈이 산더미처럼 쌓인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나그네를 가까스로 부축하여 함께 길을 갔다. 한참을 갔을까, 저 앞에 희미하게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아, 이제 우리는 살았구나” 감사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엇인가 발꿈치에 뭉클하게 걸리는 한 물체가 있었다. 그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자세히 살펴보니 추위에 얼어 죽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혼자서도 살아남기 어려운데 남을 어떻게 돕느냐고 불평하며 먼저 갔던 티베트인 이었다.

의식을 잃은 나그네를 부축하여 오느라고 썬다싱의 온 몸에는 열이 났다. 오히려 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더워져 있었다. 부축을 받은 나그네도 썬다싱의 몸에서 나온 열을 받아 따뜻하게 되었다. 혹독한 히말라야 산속의 추위에서 둘 다 생존했다.

한 마리의 일꾼 개미의 수명은 1년에 불과하지만 개미 집단의 수명은 15년이다. 한 마리의 일꾼 개미가 분비한 페로몬은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한 시간 범위 안에서 분비된 개미 50마리의 페로몬은 전체 개미 집단의 생존에 관한 중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놀라운 것은 집단에 속한 개미 하나하나가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옆에 있는 이웃을 바라보고 스스로 협력적 행동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피조물의 최고봉인 인간이 ‘나’에서 ‘우리’가 되어 움직이면 그 집단은 기적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상호 신뢰, 동질 소속감은 공동체를 강화하는 최대치이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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