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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적과 우리의 형제, 두 호칭의 차이

2023-01-30 (월) 최상석 /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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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UAE에 파병된 한국군 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라는 말의 파장이 자못 크다.

이 발언이 국익에 영향을 줄 심각한 외교적 결례요 참사라는 주장과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 분분하다. 호칭(呼稱)이 담고 있는 의미에서 볼 때 그리고 사랑 화해 평화를 큰 가르침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 종교인으로 볼 때 이는 전시(戰時)도 아닌 평시에 언급하는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왜 그런가?

인간의 삶에서 말은 매우 중요하다. 말은 인류의 오랜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는 곧 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서구철학의 거장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언어를 ‘세계’와 ‘시간’과 함께 인간에게 ‘존재(存在)’를 알려주는 “존재의 지평”이라 하였다. 인간의 모든 사고 활동은“존재의 집”인 언어(말)를 통하여 일어난다.


언어 곧 말이 나를 규정하는 셈이다. 말은 나를 만들고 나를 다른 사람이나, 자연이나, 절대자와 진선미의 ‘관계’로 만든다. 말은 우리의 삶을 웃고 울게도 한다.
개인이나 공직자의 말은 이른바 구화지문(口禍之門)을 일으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국제관계를 그르치기도 한다. 말은 인간이 절대자(하느님)에게 부여받은 신비하고 고마운 축복이자, 때로 예리한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에는 입 안에 옥구슬을 넣어 말하듯 부단히 부드럽게 다듬어야 하고, 입에 파수꾼을 세워 놓아 거짓말, 험한 말, 무례하거나 해치는 말이 나가지 못하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주고받는 말살이 글살이 가운데 누구를 부르거나 규정하는 호칭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호칭 문제는 생각처럼 그리 간단하거나 가볍지 않다. 친족 사이의 호칭이나 사회적 호칭은 물론이거니와 영원한 아군도 우군도 없는 냉엄하고 변화무쌍한 국제사회에서 호칭은 더더욱 중요하다.

호칭은 부르는 자와 불림을 받는 자, 규정하는 자와 규정 당하는 자와의 심리적 인격적 정치적 역학 관계를 나타낸다. 호칭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앎 그리고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진심을 담은 올바른 호칭은 인격의 나눔이고, 존중의 표현이고, 진실한 관계 맺음이다.

말에 힘이 있듯이, 호칭에도 힘이 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 보듯이 제대로 불러주는 이름, 올바른 호칭은 나와 꽃을 전적으로 하나 되게 한다. 이름 불러줌, 곧 호칭의 힘이다. 긍정적인 호칭은 긍정의 힘을 가져오고 부정적인 호칭은 나쁜 결과를 가져 온다.

예수께서 형제에게 모욕의 말을 하거나 바보라 하는 사람은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 하셨는데(마태5:22), 이 말씀은 곧 형제자매에게 부정적인 호칭을 사용하면 서로에게 험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니 그러지 말라는 엄한 경계의 말씀이다.

실제로 2002년 미국의 조지 W. 부시대통령은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불렀다. 그 결과 미국은 이라크와 14년간 전쟁을 하였고, 10조 달러를 전쟁터에 쏟아 부었고, 양국 사이에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부정적 호칭이 가져 온 최악의 부정적 결과이다. 미국 정부의 이 부정적 호칭은 아직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 윤 대통령의 호칭은 매우 부정적이다. 대통령의 언어에 적, 주적(主敵), 선제타격, 전쟁, 핵배치 언급이 빈번하다. 이런 말은 듣는 이의 마음에 상대방에 대한 혐오, 편가름, 투쟁심, 적대의식을 갖게 한다. 사랑과 평화를 큰 가르침의 마루로 삼고 있는 종교인의 입장에서는 듣기 불편하다. 그래서는 안된다. 험한 말, 부정적 언어의 절제가 필요하다.

평화로운 세상이 되려면 긍정적 호칭을 써야 한다. 개인이건 국가의 지도자건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호칭을 바꾸어 가야 한다. 상대방에 대하여 이해와 앎이 새로워질 때, 상대를 향한 마음과 의지가 변화될 때 호칭은 바뀌게 된다.
북한에 대한 호칭이 우리의 적에서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동포요, 우리 민족 공동번영의 동반자라는 긍정적 호칭으로 바뀌는 평화로운 한반도의 시대가 오기를 기도한다.

<최상석 /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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