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불놀이의 추억
2023-01-29 (일)
이규성/수필가, VA
음력 설이 지나고 대보름이 가까워져 오면 마음은 어릴 적에 뛰놀던 고향 동네와 친구들과 정신없이 들판과 논두렁 둑으로 뛰어다니며 쥐불놀이하느라 즐겁기만 했던 어린 시절이 그립고 동네 친구들이 불꽃이 담긴 깡통으로 밤하늘 에 그려 낸 붉은 동그라미가 눈앞에 선하게 보인다.
어른들에게는 농사일을 준비해야 하는 시작을 알리는 때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일 년 중 유일하게 불장난이 허락 되는 때이기도 하다. 설날 아침에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나면 동네 아이들은 주변에서 깡통을 하나씩 구해서 양쪽에 철삿줄을 매고 아랫부분은 굵은 못으로 구멍을 숭숭 내서 바람이 잘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면서 들뜬 기분으로 쥐불놀이 준비를 한다. 동내 아이들은 적당한 크기의 깡통을 구해 저마다 멋진 불통을 만들기 위해 온갖 구상을 다 하기도 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쓸데없어 버려진 깡통에 디자인 해 봤자 그 깡통 모습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거나 이를 감상해 줄 사람은 없지만 어린 마음에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잘해 보고싶은 욕심에서 고집스럽게 해 댄다.
일단 불놀이할 깡통을 만들어 신줏단지처럼 조심스럽게 모셔 놓고 난 후, 낮에는 자치기, 썰매 타기, 팽이치기를 하거나 연날리기 등의 놀이로 하루 해가 저물도록 놀다가 저녁 밥을 먹으러 집에 잠깐 들른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낮에 준비해 놓았던 쥐불놀이 깡통을 찾아 들고 개울 둑이나 논두렁으로 나가면 성질 급한 조무래기들은 벌써 깡통을 돌려가며 나름대로 구상했던 불꽃으로 동그라미도 그려 보고, 제멋대로 불장난을 하면서 초저녁 한때를 즐겁게 놀다가 아직도 불씨가 살아 있는 깡통을 논둑으로 날려 보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잡초를 태워 논둑에 검은 재를 남겨 놓을 때쯤이면 깡통에 남아있던 불씨도 사그라들기 시작하고 어느새 밤도 이슥해지는데 이때부터 또 다른 놀이가 우리를 기다린다.
쥐불놀이의 아쉬움을 달래가면서 동네 형을 따라 참새를 잡으러 이집 저집을 찾아 나선다. 준비물이래야 형은 작은 사다리 하나를 들고 우리는 새끼 줄을 짧게 잘라 허리띠에 매고 손전등을 들고 가는 것이 전부지만 참새를 잡는데 이 정도 준비면 충분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동네 형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지금이야 밤늦게 남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간다는 것이 범죄행위로 여겨져서 엄격히 금지되어있지만, 우리가 어릴 적만 해도 시골에서는 한밤중이긴 해도 남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안쪽을 향해 큰 소리로 “새 잡으러 왔어요”라고 말하면 안에서 “많이 잡거든 우리도 한 마리 다구”하는 대답이 들리곤 했는데 이 말은 새 잡으러 들어 온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여서 그 순간부터 우리는 까치발로 초가지붕 밑으로 살금살금 접근을 시작하면서 들고 있던 손전등을 형 손에 쥐여 준다.
당시 우리나라 가정집에서는 지붕을 볏짚으로 엮어서 만든 이엉으로 올려놓은 초가집이 대부분이었는데 참새들이 바람과 추위를 피하려고 굴뚝 옆에 있는 처마에서 자는 참새에게 동네 형이 손전등을 비추면 눈이 부셔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얌전하게 앉아 있는데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으로 참새를 잡아 형의 허리춤에 맨 새끼 줄에 매달고는 늦은 밤까지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면서 참새를 잡다가 밤이 깊어 질 무렵에 형이 나누어 주는 참새 몇 마리를 얻어서 내 허리춤에 달고 집으로 가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 오른다.
초저녁에는 쥐불놀이에 취해서 개울 둑과 논둑을 헤매며 놀다가 밤이 이슥하도록 참새를 잡는다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놀다가 집으로 들어올 때쯤에는 온몸에서 메케한 나뭇가지 탄 내가 나기도 하고 허리춤에선 옷에 붙어 있던 새털이 방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너무 늦게까지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 어머님께 혼날 일이 무서워서 까치걸음으로 방에 숨어 들어가 정신없이 잠에 곯아떨어진다.
쥐불놀이하러 가자고 그렇게 나를 불러대던 어릴 적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밤하늘에 쥐불 깡통이 그려 낸 불꽃 동그라미 속에서 보고 싶은 친구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아… 옛날이여… 그래서 추억은 아름답다고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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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수필가,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