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범죄 스릴러 ‘홀리 스파이더’의 한장면.
‘홀리 스파이더’의 알리 아바시 감독·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 배우
‘홀리 스파이더’(Holy Spider)는 2000년부터 2001년까지 이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마샤드에서 일어난 16명의 창녀 연쇄살인사건 실화를 다룬 긴장감 가득한 범죄 스릴러이다. 이 영화는 엽기적인 살인사건과 함께 이란의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를 신랄하게 비판한 사회비평영화이기도 하다. 사건의 범인은 아내와 세 자녀를 둔 노동자로 신실한 회교신자 사에드 하나에이(메디 바제스타니 분)로 그는 밤거리의 악을 말끔히 쓰러버린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범행을 저질렀다. 영화는 이 같은 실화에 허구인 인물로 창녀로 위장하고 사건을 추적하는 신문기자 라히미(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올 칸 영화제서 여주연상 수상)를 등장시켜 긴장감을 북 돋우고 있다. 영화는 이란 감독이 연출하고 이란 배우들이 나오지만 제작비는 덴마크와 스웨덴 등지에서 댔다. 덴마크의 2023년도 아카데미 국제 극 영화상 후보 출품작이다. 테헤란 태생의 자르 아미르 에브라히미(Zar Amir Ebrahimi·41)는 배우이자 캐스팅 디렉터이기도 한데 자신과 애인이 연루된 섹스테이프 스캔들로 인해 2008년에 국외로 추방돼 현재 파리 시민으로 파리에서 살고 있다. 영화를 감독한 알리 아바시(Ali Abbasi·41)는 테헤란 태생으로 스웨덴으로 이민해 건축학을 공부했고 이어 덴마크로 이주해 영화를 전공, 현재 코펜하겐에서 살고 있다. 다음은 최근 LA의 한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 후 아바시와 아미르 에브라히미가 사회자와 가진 일문일답 내용이다.
-영화 제목의 뜻은 무엇인가.
“거미란 뜻의 스파이더는 사건 당시 이란의 미디아들이 사건을 지칭한 ‘스파이더 킬링스’에서 따온 것이다. 범인이 거미처럼 집을 지어놓고 창녀들을 유인해 목 졸라 죽인 것을 지칭한 것이다. 신성하다는 뜻의 홀리는 범인이 자신을 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 자기 범행을 신성한 임무로 여겼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알리)
-라히미 역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가.“내가 처음에 이 영화에 관계된 것은 캐스팅 디렉터로서이다. 2008년에 이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들었을 때 나는 그 것이야 말로 반드시 얘기돼야 할 중요한 사건이라도 생각했다. 그래서 알리가 캐스팅 디렉터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자원했다. 그를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린 3년에 걸쳐 500여명을 오디션 한 끝에 라히미 역을 맡을 배우를 찾아 재능 있는 이란 배우를 골랐는데 촬영 1주일 전에 그 배우로부터 못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유럽과 이란에서 모두 60여명의 배우들을 만났지만 알맞은 배우를 고를 수가 없었다. 난 전연 카메라 앞에 설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해도 배우를 찾아낼 수가 없어 내가 알리에게 ‘내가 한번 해 볼까요’라고 제의했다. 이에 알리는 ‘내가 필요한 사람은 투사인데 당신은 너무 부드럽고 착해 역에 안 맞는다’고 일축했다. 그런데 내가 막판에 못하겠다고 말한 라히미 역의 배우의 통보에 대해 대노하는 것을 본 알리가 나의 나쁜 일면을 보았는지 그 다음 날 스크린 테스트를 하자고 제의했다. 그래서 다음 날 24시간에 걸친 오디션 끝에 내가 라히미 역을 맡기로 한 것이다. 촬영시작 불과 5일 전이었다. 그리고 준비를 하기 위해 사건 당시 이란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의 대답은 한 결 같이 기자들이 당국으로부터 자행되는 취재 방해와 함께 취재 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난 그 때까지 기자들은 그 누구도 해를 끼칠 수가 없는 자기 목소리를 지닌 사람들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방해와 어려움은 여기자들에 대해선 더 심했다. 난 여기서 라히미가 자기 목숨을 내걸고 사건을 취재하겠다고 결심한 동기를 발견했다.”(자르)
-영화는 이란에서 못 찍고 요르단에서 찍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이란에서 찍으려고 문화성 당국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란에는 훌륭한 영화인들이 많다. 난 당국자에게 ‘난 검열을 싫어하고 또 당신의 조건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많지만 사건이 일어난 마샤드에서의 촬영을 허락해준다면 내가 양보를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그 당국자는 결코 ‘노’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란에서는 ‘노’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말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나보고 ‘거의 다 됐어. 서명만 하면 되는데 결재자가 현재 휴가 중이니 기다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담당자가 바뀌어 새로 시작해야했는데 이렇게 차일피일되는 바람에 터키에서 찍으려고 허락을 받았으나 막판에 가서 허락이 취소됐다. 이란에서 은근히 압력을 넣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요르단에서 찍게 된 것이다.”(알리)
-영화에 나온 이란 배우와 제작진이 당국으로부터 어떤 처벌이라도 받지 않았는가.“사에드로 나온 메디는 현재 우리가 국외에서 보호 중이다. 그가 이란으로 돌아간다면 좋은 일이 생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란 당국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영화를 편집한 사람은 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았고 그 밖에도 영화에 관계한 여러 사람들이 시련을 받고 있다.”(알리)
-라히미와 당신과 닮은 점이라도 있는지.“역을 위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라히미를 내 안에서 느꼈다. 여자로서 겪은 이란에서의 내 삶의 경험과 라히미의 그 것에서 어떤 연관성을 감지했다. 그리고 왜 라히미가 자기 목숨을 내 걸고 취재를 하는지를 자문했다. 그 이유에는 진실을 찾으려는 것 외에도 밤거리의 여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연쇄살인범의 얘기라기보다 불우한 처지에 사는 모든 여자들의 것이다. 모든 창녀들은 다 자기의 할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라히미는 영웅이라 부를만하다. 난 영화를 만들고 나서 매일 같이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이란의 거리에서 자신들의 삶에 닥칠 위험을 각오하고 활동하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들은 단지 여자들 뿐 아니라 남자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도 자기 목숨을 내걸고 있다.”(자르)
-이 영화가 이란에서 상영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불행하게도 이란 시민들은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며 사실을 왜곡한 것도 아니고 또 누구를 모욕하거나 해치는 얘기도 아니다. 그래서 난 이란 정부와 미디아 그리고 이란의 종교지도자들이 내게 그 잘난 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10년간 온갖 고역을 치른 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마블만화를 영화로 만드는 대신 이런 영화를 만든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며 또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알리)
“내가 이란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나 돼야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게도 상을 줘야 할 것이다.”(자르)
-영화를 만들기로 한 동기는 무엇인가.“사건이 일어났을 때 난 이란에서 살고 있었다. 스웨덴으로 이민 가기 직전이었다. 그 때만해도 난 영화인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실로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던 셈이다. 1년에 걸쳐 16명의 여자들을 살해했다는 사건이야 말로 이란에서는 9/11 테러 사건과도 같은 세기의 사건이었다. 일종의 도덕적 9/11 사건이라고 하겠다. 이란에서도 살인을 비롯한 범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은 이란의 수준에서 보면 그 때까지 들어보지 못한 엽기적인 일이었다. 사건의 후유증 중에 해괴하다고 할 만 한 것은 시회의 적지 않은 소수가 사에드와 그의 행동을 지지한 것이다. 일부 미디아는 사에드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고까지 보도했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이야말로 충분히 이야기 할 만큼 복잡다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공분할만한 것이며 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알리)
-라히미의 모델이 된 여기자를 만났는지.“그 여기자는 그 사건에 대해 다소 썼을 뿐이지 목숨을 내걸고 창녀로 위장하고 취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난 그 여자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다룬 기록영화에서 그 기자를 볼수는 있었다. 그러니까 그 기자가 내 영감의 한 작은 부분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도움이 된 것은 아니다. 알리 감독이 말했듯이 나도 이 영화를 일종의 허구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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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