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중요성은 새삼 얘기할 필요가 없다. 말은 잘하면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화를 입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말 때문에 최근 한국에는 정치인들이 곤혹을 치르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고 있다.
얼마전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과 기후변화 대사직에서 해임되자 ‘대통령의 본의가 아닐 것’이라는 말 한마디 했다가 대통령실과 큰 충돌을 일으키며 파장이 이는 것을 보면 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특히 한 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다른 나라를 상대로 하는 발언 한마디는 그 나라의 손익과 결부되는 것이고, 심지어는 외교적 충돌이나 마찰을 일으켜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순방중 현지에 파병된 아크부대에서 한 연설이 이란 정부를 발끈하게 하는 사태가 발생,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빼는 경우를 보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며 “우리와 UAE가 매우 유사한 입장에 있다”라고 한 연설 내용이다.
얼핏 보면 전쟁 선포나 다름없는 이 발언에 대해 이란 외무부는 한국 정부에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정확한 설명을 기다린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만약 한국이 지혜롭게 설명을 못할 경우 한국과 아무런 상관없는 중동 문제에 엉뚱하게 끌려들어갈 수 있는 일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후 첫 아랍에미리트 국빈 방문에서 받은 웅장한 대접과 300억 달러 상당의 투자 유치에 대한 약속 등으로 그렇게 함부로 발언을 해도 되는 걸까. 한 중동지역 전문가는 한류가 가장 폭발적인 이란의 국민들이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친밀감이 배신당했다는 감정과 분노는 예상보다 훨씬 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충격과 그에 따른 경제적 침체는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감소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경제 혼란에 인플레이션 압력 등으로 국정 운영이 힘든 상황에서 전쟁의 먹구름까지 한반도를 드리우고 있다.
수없이 반복된 전쟁의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각국의 실업률이 높아지고 삶에 대한 회의가 늘어나면서 전쟁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평화적 해결책 모색에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모호한 발언으로 긴장의 수위를 높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동북아의 핵이나 다름없는 한국 정부는 한반도 주변지역까지 피 터지는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도발적 언사를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행동은 자칫 동북아로 불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신호로 여겨져 왔다. 이런 때 대통령의 어설픈 발언이 공연히 문제를 악화시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현재 동북아 정세는 불안정한 지정학적 상황으로 위태롭기 짝이 없다. 남과 북, 중국 모두에게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다가오면서 이러한 긴장이 본격적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위기감이 군사적 갈등으로 폭발하지 않도록 군통수권자는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해야 할 일이다.
“여기가 바로 여러분들의 조국이고 우리의 형제 국가인 UAE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라고 한 연설 내용도 아랍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도 잘 모르는 나라를 ‘조국’이라고 불러달라는 말은 좀 타당치 않은 것 같다.
한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온 지 어느덧 100년. 3,4대가 미국 시민으로 살면서 영관급 장교들이 배출되기 시작하는 이 땅을 조국이라 말하라고 한다면 그래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하지만 무슨 작은 아랍 나라를 아버지, 할아버지의 나라로 부르라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어쨌든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말을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 전쟁의 위험 구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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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