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철인하는 사람들

2023-01-17 (화) 안상호 논설위원
크게 작게
수영 3.8Km, 사이클링 180Km에 풀 코스 마라톤을 더하면 226Km(140마일)가 된다. 대략 17시간 정도 안에 이 3가지를 모두 마쳐야 하는 삼종경기(triathlon)가 바로 아이언맨(ironman) 대회다. 이른 아침에 시작해도 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된다. 요즘은 풀의 절반 거리인 해프 대회도 많지만 그것도 113Km를 완주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극한 스포츠의 하나로 보여 질 수 있는 이런 아이언맨, 철인(鐵人)에 도전하는 한인이 늘고 있다. 10여년 전 서너 명이 모여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한인 삼종팀(KATT)도 결성돼 있다. 다양한 직종의 50~60대가 주축인데 여성도 적지 않아 모두 하면 50여명에 이른다.

해가 갈수록 풀이나 해프, 아니면 이보다 거리가 짧은 올림픽 사이즈(51.5Km) 삼종 대회에 참가하는 한인이 많아지고 있다. 전에는 한 두명씩 몇몇 대회에 출전하는 정도였으나 지난 해 11월에는 같은 주말에 멕시코와 애리조나에서 열린 아이언맨 대회에 한꺼번에 10명 가까이 참가했다. KATT회원 카톡 방에는 실시간 중계와 응원이 이어졌다.


아이언맨에 도전하는 이들은 거의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의외로 마라톤을 하다가 부상을 당해 삼종으로 전환한 이도 있다. 발이나 다리를 다치면 뛸 수 없지만 수영이나 자전거는 가능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에 비해 삼종이 오히려 몸에 무리가 덜한 것 같다는 이도 있다. 운동에 따라 쓰는 근육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아이언맨이 된 사람 중에는 처음 수영을 배울 때 헤엄을 치면 뒤로 가던 흑역사를 가진 이도 있다. 대회 중에 길을 잃어 동네 아이들을 따라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미답의 종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풀 코스 도전은 자녀들이 대학가고 난 후에 하겠다는 이도 있다. 아이언맨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대회에 가보면 그래서 아주 청년 보다는 중장년층 참가자가 많다.

마라톤, 트레일 마라톤을 거친 후 삼종을 시작해 아직 올림픽 사이즈만 해 봤다는 사람도 있고, 해프만 8번 뛰었는데 일흔이 되기 전에 풀에 도전하겠다는 이도 있다. 풀 코스만 8번 도전해 모두 성공한 사람도 있다. 기록을 마음에 두지 않고 컷 오프 안에만 끝내자는 생각으로 뛰었다고 한다. 140마일 경기를 중도 포기 없이 모두 완주해 낼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인지도 모른다.

한 응급실 의사도 지난해 처음 아이언맨을 해내 박수를 받았다. 이 모임에서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지는 박수는 처음 머리를 올린 사람에게 보내지는 것이다. 어떤 과정, 어떤 어려움을 이겨 내야 성공할 수 있는지 서로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완주했을 때 성취감이 그렇게 클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소감이다.

한 60대 후반 여성은 올림픽 사이즈의 삼종을 준비하면서 건강을 되찾게 됐다고 한다. 풀 아이언맨 2번에, 해프는 열 몇 번을 한 베터런 여성도 있다. 철인은 그에게 마지막 버킷 리스트였다고 한다. 이제 그냥 여행은 어쩐지 싱겁고, 경치 좋은 곳에서 열리는 해프 대회를 골라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언맨 훈련을 통해 단단해진 몸으로 바디 빌더 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다. 226Km 풀만 5번 도전했다는 여성도 있다. 본인 표현을 빌면 한 번은 너무 힘들어 자진 사퇴했고, 또 한 번은 시간 제한에 걸려 탈락, 나머지 3번은 완주했다. 풀만 2번 도전해 거뜬히 해낸 여성도 있다. 철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연말 KATT모임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사람은 ‘지 형님’으로 불리는 지성호씨. 80연대 초 남가주 한인중에서는 가장 먼저 아이언맨을 해낸 것으로 알려진 임무성씨와 함께 KATT의 최연장자중 한 사람으로 70대 중반이다.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삼종에 입문했다. 수영과 사이클을 65살에 배우기 시작했다. 마라톤을 하다가 족저근막염으로 달리기 어렵게 된 것이 삼종을 하게 된 계기였다.

그는 해프 3번을 마쳤으나 풀은 사이클링에서 제한 시간의 문턱을 넘지 못해 잇달아 완주에 실패했다. 2,400여명이 출전한 지난해 한 대회에서는 나이 순으로 전체 참가자중 상위 10위안에 랭크되기도 했다. 70대의 아이언맨 도전은 일반 미국인에게도 흔치 않은 일이다. 도전을 계속하는 것이 자칫 만용이 될까 경계하고 있다지만, 건강 걱정을 하는 다른 은퇴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저녁마다 커뮤니티 풀장에서 열리는 수영 매스터 클래스에 참석하고 있다.

삼종에 긴 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사이즈의 반인 스프린트, 그 아래 등급인 수퍼 스프린트도 있다. 이런 단거리는 대신 속도전이 치열하다. 8살 어린이도 참가하는 초미니 삼종은 50미터 풀장 수영 뒤 잔디에서 자전거 800미터를 탄다. 마지막으로 트랙 한 바퀴 반인 600미터를 달리면 끝. 수영, 사이클링, 러닝이 고루 섞인 균형 잡힌 스포츠를 소개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언맨은 한인들이 맨 몸으로 부딪히며 알아가고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 나가는 중이다. 모임에 가면 배 나온 사람을 찾을 수 없고, 한국 정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운동 이야기만 해도 할 말이 너무 많다.

<안상호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