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월 3일은 내 생애 최대 변곡점인 해외생활의 첫 걸음을 뗀 날이다. 그 후 어언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다. 타국살이가 고국에서의 생활을 추월한 지도 꽤 됐다. 그럼에도 내 정체성의 9할은 한국에서의 삶이다. 정신적인 근간 역시 조국인 건 영원불변일 것이고.
얼마 전 본 카톡에서다. 세계적인 성악가를 꿈꾸며 나처럼 83년도에 고국을 떠나 스페인에 정착한 임재식씨 얘기다.
당시엔 한국의 위상이 미미해 국제사회에서의 인지도가 무척 낮았다. 그는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하는 설움 속에서 기필코 노래로 한국을 알리겠다는 야망을 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9년 스페인 국영방송의 합창단장으로 취임하자, 한국노래 전파에 앞장섰다.
영상을 보니 맨 앞줄의 여성단원들은 한복으로 단장한 남녀혼성합창단이 한국어로 열창하는 곡이 우리의 ‘애국가’가 아닌가. 수백만 명이 방송으로 본다는데 말이다. 나는 첫 소절부터 울컥 목이 메어왔다. 하얀 두루마기 차림의 임단장이 어찌나 열정적으로 지휘하는지 가슴이 벅차오르며 찡해온다.
이어 1999년에 창단됐다는 국영방송국의 소년밀레니엄합창단의 합창이다. 지휘자가 스페인남자인데도 어린이들은 악보도 없이 한국어로 ‘과수원 길’을 청아하게 부르는데, 발음이 너무 정확해 놀랍다. 얼마나 연습하고 외우느라 힘들었을까 상상하니 그들의 노고가 돋보였다.
다음엔 임단장의 지휘아래 성인합창단과 어린이 합창단이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멋진 화음으로 혼연일체가 된 듯 어우러진 그윽한 선율이 웅장하고도 감명 깊다. 객석 관중들 또한 일제히 기립박수로 경의를 표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든지 뿌듯함에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겠다.
더한 건 임단장의 오랜 소망대로 2021년 초등학교 음악책에 아리랑이 실렸단다. 인제 스페인에선 한국가요, 가곡, 동요, 민요까지도 부른단다. 한 개인의 애국심에서 탄생된 꿈의 결실이 이토록 창대하다. 장한 임단장님이 존경스럽고 고맙다.
또 다른 예로, 나는 골프를 안 치지만 한국선수들을 응원 차 중계방송은 꼭 챙겨본다. 그중 내 시선을 확 끄는 골퍼가 개인적으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고진영 선수다. 그녀를 달리 보게 된 계기는 그녀가 지참하는 스코어기록수첩이다. 어느 게임에선지 바지뒷주머니 위로 삐져나온 수첩에 새겨진 검은색의 두 괘를 보고서다.
처음엔 무심히 넘겼지만 분명 태극기의 네 괘중 두 개다. 추후 유심히 주시하다, 예측대로 수첩 앞면인지 뒷면인지 모르나 분명 선명한 태극기가 새겨진 걸 보았다. 매 게임마다 한결같은 걸로 보아 의도적인 선택이 분명하다. 광고성도 없고 잘 나타나지도 않는 소품이기에 더 달리 느껴졌다. 백 마디 말이나 글, 거창한 행동만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니까. 묵묵히 태극기를 앞세운 작은 실천도, 속에서 우러나는 나라사랑의 참된 충정(衷情)이니까.
유감이지만 나는 특출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이민자일 뿐이다. 별처럼 고국을 빛낼 수도, 크게 국위선양을 할 수도 없다. 허나 나름대로 어느 자리에서건, 한국인이란 자긍심으로 코리안 인상을 좋게 남기자는 주의로 긴장하며 살아온 편이다. 타국에선 나 같은 민간인들도 친선사절이 돼야하니까. 한층 상승 중인 한국의 국격에 유념하면서, 앞으론 매사 더욱 걸맞게끔 처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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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숙/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