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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의 ‘거리두기’

2023-01-03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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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가까이 지속된 팬데믹으로 일상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서적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주 잠깐 잘 적응하고 있는 듯 생각되다가도 불확실한 미래를 떠올리면 마치 검고 커다란 그림자가 자신을 덮치는 것 같은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 위를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의 정신적 불안과 정서적 흔들림 속에서는 일상의 루틴 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사회적 교류, 그리고 경제생활 등의 영역에서 최적화된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 방식은 각자의 처지와 성격적 특성에 맞게 만들어 나가면 된다.

하지만 자기 나름의 목표와 여건에 맞춰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운다 해도 꾸준히 이를 실천해 나가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다짐과 계획이 잘 흔들리지 않도록 한 줄로 엮어줄 간단한 원칙을 먼저 세워본다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짐을 수시로 되새기기에도 좋고 실천 의지도 자극해준다.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들 모두가 배웠고 열심히 실천했던 것, 바로 ‘거리두기’가 그런 원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충분한 거리만 잘 지켜도 바이러스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비단 코로나 방역뿐 아니라 팬데믹 이후에도 삶의 전반적 영역으로 확대해 적용할 수 있는 훌륭한 지혜가 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팬데믹이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소비와 지출을 대폭 줄인 사람들의 스토리를 보도한 적이 있다. 이 기사에 소개된 오리건의 한 여성은 어떤 물건을 사고 싶다는 충동이 생길 때마다 바로 구매하기보다는 우선 그런 물건의 리스트를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렇게 한 후 만약 연말에도 여전히 그 물건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구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구매한 물건은 없었다. “유혹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 여성이 사용한 방법은 ‘거리두기’ 실천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사고 싶다는 충동을 부추기는 ‘자극’과 물건을 구입하는 ‘반응’ 사이에 충분한 시간적 거리를 둔 것이다.

이렇듯 거리와 공간이 필요한 일상 속 행위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쇼핑이다. 일단 ‘지름신’이 강림하게 되면 이를 억제하기가 너무 힘들다. 충동을 못 이겨 집어든 물건이 일시적 쾌감을 안겨줄 지는 몰라도 이것은 십중팔구 후회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그런 만큼 충동과 행위 사이의 거리를 충분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이런 부정적 감정과 재정적 불안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충동과 구매 사이의 거리를 잘 지키는 것이 재정적 잔고에 도움이 되는 지혜라면 정서적 잔고 유지를 위해서는 분노의 감정과 반응 사이의 거리를 충분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분노가 관계를 망치고 상처를 안겨주게 되는 것은 대부분 그것이 고개를 뜰 때 즉각적으로 그런 감정을 표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적인 간격, 그리고 나 자신과의 거리를 두고 냉정히 그런 분노를 들여다보면 부정적 감정을 투사해야 할 별다른 원인이나 대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한다. 설사 분노를 드러내야할 상황이라 해도 곧바로 행동으로 나타내기 전에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면 훨씬 건설적으로 이것을 나타낼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미국사회에서 확산돼온 ‘마음 챙김’(mindfulness)은 바로 여기에 바탕을 둔 명상법이다.

덴마크의 저명한 심리치료사 일자 샌드는 ‘서툰 감정’이란 책에서 “강렬한 감정은 시야를 좁아지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런 감정에 따른 행동들을 지연시켜주는 실질적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따뜻한 물로 목욕 혹은 족욕하기 ▲1에서 10까지 숫자세기 ▲친구에게 전화걸기 ▲기도하기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추기 같은 것들이다.

팬데믹은 우리에게 ‘거리두기’의 중요성을 아주 혹독한 방식으로 깨우쳐 주었다. 큰 대가를 치르고 배운 ‘거리두기’의 현명한 지혜를 팬데믹 시기를 넘어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까지 삶의 방식들로 확대해 적용해 나간다면 그것은 풍파 속에서도 우리가 덜 흔들리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평형수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한해를 시작하는 1월은 이런 다짐을 하기 좋은 시기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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