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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어제의 머스크, 오늘의 머스크

2022-12-29 (목) 정혜진 서울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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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구를 구하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인류가 살 수 있는 새로운 지구를 가져다줄 사람입니다. 광대이자 천재, 관종이자 선지자이며, 사업가면서 쇼맨이기도 합니다. 그는 토머스 에디슨과 P T 바넘, 앤드루 카네기, 그리고 DC코믹스의 그래픽 노블 워치맨의 닥터 맨해튼을 섞어 놓은 인물입니다.”

지난해 시사 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선정하며 내놓은 평이다. 당시 에드워드 펠즌솔 타임 편집장은 “머스크는 지구의 삶은 물론 지구 바깥의 삶까지 비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머스크의 영향력을 치켜세웠다. 올해의 인물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는 설명과 함께.

지난해는 의심할 여지없이 머스크의 해였다. 전 세계를 휩쓴 반도체 칩 부족 사태에 경쟁사들이 맥을 못 출 때도 테슬라는 기록적인 생산량을 보였다. 시장의 수요 증가와 더불어 처음으로 분기 순이익이 10억 달러를 넘겼다. 테슬라가 자동차 업계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에 테슬라 주가는 1,200달러를 넘어섰다. 시가총액이 완성차 업체인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를 합친 것보다 컸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모든 요인이 ‘머스크 효과’로 보였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머스크의 영향력은 가히 파괴적이다. 테슬라 주가는 올 들어 70% 가까이 빠졌다. 거시경제의 불확실성과 업계의 경쟁 심화, 중국 시장에서의 전기차 수요 감소 등 외부적 원인이 작용했지만 투자자 사이에서 테슬라에 대한 믿음을 잠식한 것은 무엇보다 ‘머스크 리스크’였다. 지난해 스스로를 암호화폐 ‘도지코인의 아버지’로 칭하며 테슬라 일부 상품의 결제 수단으로 도지코인을 활용한다는 약속을 남발했을 때만 해도 투자자들은 이를 머스크의 별난 취미 생활 정도로 받아들였다. 이후 자신의 영향력을 과신한 머스크가 새롭게 탐닉한 장난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였다. 머스크는 이전부터 트위터를 통해 극단적인 정치적 의견이나 사업 비전을 피력해 온 터였다. 거기까지였다면 많은 CEO들이 부러워할 ‘소통왕 CEO’의 본보기가 됐을 수도 있다.

문제는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그의 욕구가 너무 컸다는 점이다. 결국 머스크는 스스로 트위터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440억 달러에 트위터를 인수하겠다는 과감한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일을 벌인 것은 머스크였지만 수습에는 테슬라의 현금과 성장성이 담보로 맡겨졌다. 거시경제 상황은 나날이 어려워졌고 막대한 인수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머스크는 4월 이후 약 29조 원어치에 달하는 테슬라 지분을 매각했다. 직접 ‘트위터 정상화’ 작업에 몰두하며 테슬라 엔지니어 인력까지 차출했다.

머스크가 트위터에 몰두한 사이 정작 테슬라에서는 사실상 CEO 부재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다. 테슬라가 새 CEO를 세운다는 추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머스크는 뒤늦게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트위터 CEO 자리를 넘기겠다는 답변을 내놓았지만 당분간 그를 대체할 사람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적어도 머스크의 눈에는 말이다.

테슬라의 부침은 이른바 ‘영웅창업자(Heropreneur) 신화’에 대한 피로감과 한계를 반영한다. 한 사람의 특출한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영웅창업자 신화가 실망스러운 결말로 막 내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객 예치금을 빼돌려 투자 운용 자금으로 활용해 고발된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도 한때 영웅창업자로 여겨졌다. 실리콘밸리의 대표 벤처캐피털(VC)인 세쿼이아캐피털은 “뱅크먼프리드는 구원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며 “영향력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타심에서 비롯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웅의 가면이 벗겨지자 드러난 민낯은 시스템의 부재를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누린 사기꾼의 모습뿐이었다.

영웅창업자 신화는 현실과 거리가 먼 ‘신화’일 뿐이다. 테슬라 같은 상장사 운영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테슬라는 물론 머스크도 이제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혜진 서울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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