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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의 법률 칼럼 - 2022년 연방대법원 결산

2022-12-21 (수)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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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지갑을 얇게 만든 고물가 인플레이션에서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최근에 막을 내린 카타르 월드컵 등 올해도 많은 일이 있었다. 연방대법원은 ‘블록버스터의 해’라고 부를 정도로 굵직한 사건들을 많이 다뤘는데 4개의 키워드를 통해 2022년 결산을 해본다.

1. 대법원 정통성의 행방
올 6.30. 케탄지 브라운-잭슨(Ketanji Brown-Jackson) 판사가 흑인 여성 최초로 연방대법관이 됨으로써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4명의 여성이 대법관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또 브라운-잭슨 대법관은 지금까지 116명의 대법관 중 첫 국선변호사 출신이란 점에서 대법원에 더욱 다양성과 가능성, 정통성을 더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와 같은 기대와는 달리 역사상 처음으로 대법원 판결문이 사전 유출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하필이면 그게 50여 년간 여성의 낙태권을 지켜준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을 뒤집는 사건의 판결문이어서 세간의 충격은 더 컸다.


대법원 밖에선 연일 이어지는 시위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 5월부터 3개월간 건물 주위에 펜스가 쳐졌는데 펜스 너머로 땅에 떨어진 대법원의 권위가 투영되는 듯했다.

2. 사생활의 권리의 미래
대법원이 ‘돕스 대 잭슨 여성기구’(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 사건을 통해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에 대해 6대 3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앞의 ‘로 대 웨이드’ 판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과거의 대법원은 ‘로’ 사건에서 임신 중절은 헌법이 임산부에게 보장하는 ‘사생활의 권리’(right to privacy)에 포함된다고 판단한 데 반해 올해 ‘돕스’ 판결문에서는 ‘사생활의 권리’ 부정뿐 아니라 낙태권은 미국의 “역사와 전통에 깊이 뿌리박은”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로’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돕스’ 사건 이후 각 주는 주 의회의 정치성향에 따라 낙태권을 축소하는 보수성향 주와 폭넓게 낙태권을 인정하는 진보성향 주로 갈려 입법 방향이 양극화되는 모습이다.
‘돕스’ 사건으로 미루어 ‘사생활 권리’에 기반을 둔 대법원 판례, 즉 동성 간 성행위 등도 곧 제재를 받을 것으로 예견된다.

3. 총기규제 축소
비극적이게도 올 한 해 역시 크고 작은 총기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대법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뉴욕주 라이플·권총협회 대 브루엔’(New York State Rifle and Pistol Association v. Bruen) 사건에서 권총을 휴대할 수 있는 허가를 받으려면 ‘정당한 사유’와 ‘착한 품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뉴욕주의 총기규제 법률은 총기 소유 권리를 규정한 수정헌법 2조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4. 인종문제 시각 전환
오랜 기간 소수인종의 투표권을 보장해준 투표권법이 위기에 직면했다. 대법원은 최근 7개의 하원 의석이 배정된 앨라배마주에서 흑인이 27%나 되는데도 흑인에게 유리한 선거구는 1개(14%)밖에 되지 않아 문제가 된 ‘메릴 대 밀리건’(Merrill v. Milligan) 사건에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1인 1표 원칙’이란 특정 인종을 우대하는 것이 아닌, 인종 중립적(race neutral) 의미”라는 견해를 밝혀 위헌 판결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비슷한 예로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 대 하버드대’(Students for Fair Admissions v. Harvard)사건도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하버드의 입학사정 기준이 우수한 아시안 학생들을 역차별한다며 시작된 이 사건은 하버드가 지방법원과 항소법원에서 연승하며 대법원까지 올라왔다.

과연 대법원이 소수계 우대 대학 입학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세인의 관심이 뜨겁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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