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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조지 마이클의 인물 창조, 후반부는 그의 삶을 파괴하는데 썼다”

2022-12-16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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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조지 마이클: 어 라이프’의 저자 제임스 개빈

“전반부는 조지 마이클의 인물 창조, 후반부는 그의 삶을 파괴하는데 썼다”
MTV 세대의 우상이요 록뮤직의 전설적 인물로 1980년대 초부터 2016년 53세로 사망하기 얼마 전 까지 활동한 영국의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음반제작자였던 조지 마이클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책‘조지 마이클: 어 라이프’(George Michael: A Life)의 저자 제임스 개빈(James Gavin·58)을 영상 인터뷰했다. ‘케어리스 위스퍼’와 ‘패스트 러브’등 수많은 히트 곡을 낸 조지 마이클의 음반은 생애 총 1억 2천만 장이 팔렸으며 1985년에는 서양 팝가수로서는 첫 중국 공연을 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그래미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동성애자인 그는 성적인 문제와 약물 복용 등으로 경찰에 여러 차례 체포되면서 언론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개빈은 그의 최근 저서인 ‘조지 마이클: 어 라이프’ 외에도 레나 혼과 페기 리와 쳇 베이커 등 여러 가수와 음악인 등의 전기를 썼다. 뉴욕의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개빈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인터뷰를 즐기는 듯이 활발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전반부는 조지 마이클의 인물 창조, 후반부는 그의 삶을 파괴하는데 썼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쓰면서 조지 마이클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은 무엇인가.

“조지 마이클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그가 2016년 12월 25일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난 그때 까지 20년간을 조지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간직해 왔었다. 조지는 죽기 몇 년 전 자신이 직접 자서전을 집필하려고 했으나 건강이 안 좋아 책의 첫 장의 일부만 쓰고 포기했다. 그래서 내가 대필 작가가 되겠다고 자원했으나 이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조지가 사망한 후에 내가 다시 그의 전기를 쓰겠다고 신청해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책을 쓰면서 그에 관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조지가 음악세계와 자신에 대해 모두 깊은 불행 감을 느끼며 살았다는 것이다. 조지의 이런 자기 증오의 이유는 그가 동성애를 사갈시하던 어린 시절에 동성애를 역겨워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조지는 어릴 때 자기를 도무지 매력이 없으며 뚱뚱하고 또 아주 멋없는 사람이라고 느끼며 자랐다. 나는 조지가 이렇게 극도로 자신감 없이 자란 과거로부터 벗어나 후에 전 세계가 탐을 내는 팝음악 세계의 섹스 심볼이 된 과정에 깊은 매력을 느꼈다. 그는 생애 전반부를 조지 마이클이라는 인물 창조에 사용했고 후반부는 그의 삶을 파괴하는데 썼다.”

-당신은 조지 마이클 외에도 여러 명의 음악인들의 전기를 썼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조지 마이클 전에 쳇 베이커, 페기 리 및 레나 혼의 전기를 썼는데 이들의 중요한 공통점이란 모두 가슴 속에 갈등과 슬픔이 휘몰아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감정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만져주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길을 찾은 사람들이다. 아름답게 노래하고 뛰어나게 훌륭한 연주를 해도 아무 느낌을 주지 못하는 가수와 연주자가 있는 반면 내가 전기를 쓴 이들은 자기 외의 타인들이 느끼고 또 겪는 것에 대해 공감과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에 대해 노래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위해 노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아주 마법적이요 설명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조지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엄청난 고통을 지니고 산 사람으로 슈퍼스타요 억만장자가 됐으면서도 발은 땅을 굳건히 디디고 섰었다. 이는 그가 내면으로 엄청난 고통을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는 불운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폭 넓은 자선과 박애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중의 하나인 그는 고난에 처한 친구들과 사람들과 이들을 돕는 기관들과 깊이 연결돼 생애 수백만 파운드를 기부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가슴으로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조지 마이클은 스캔들로 얼룩진 자기 삶을 풍자하는 TV쇼에 참가하는 등 대중문화행사에 기꺼이 참여한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 그는 죽기 몇 년 전 부터 샛길로 나가 TV 코미디 쇼에 많이 나왔다. 그는 연기도 할 줄 알며 매우 우스운 사람이자 자기를 조소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생애 마지막 즈음에 왔을 때에는 그의 여러 차례의 음주와 약물 복용운전 그리고 공공연한 성적 스캔들에 관한 기사들이 하도 많이 나가 다른 사람같았으면 자기 보호에 급급했을 텐데도 조지는 이를 웃어 제켰다. 그는 자신에 관한 가장 볼썽사나운 사건들을 얘기하는 TV 좌담회나 이 사건들을 가차 없이 풍자하는 TV 코미디 쇼에 나와서도 참석자들과 함께 박장대소 하면서 즐겼다. 그러니 그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기를 조롱하는 프로를 즐기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조지를 더욱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을 쓰기 위해 여러 사람을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경우는 어떤 것이며 그 사람들이 반드시 진실을 얘기한다고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가.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준비를 하는 처음 1년 반 동안은 인터뷰를 요청한 조지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거절당했다. 그 벽이 너무 높고 단단해 절망적이었다. 이렇게 거절당한 이유는 우선 조지가 생애 후반 20년 동안 가십전문 잡지와 신문의 주인공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매체들의 조지에 대한 보도는 추잡하기 짝이 없었는데 조지가 그런 자료를 스스로 제공하다시피 했으니 기자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로 인해 조지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또 하나의 가십 지 기자나 염탐꾼으로 생각하고 인터뷰를 마다한 것이다. 이런 선입견을 깨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가 조지의 오랜 타악기 연주자였던 대니 커밍스가 인터뷰에 응하면서 막혔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가 진지한 의도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씩 인터뷰를 승낙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아닌지는 내가 책을 쓰기 위해 과거 35년간 수천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 하면서 얻은 경험에 의해 알 수 있다.”

-조지가 사람들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평소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노래를 쓰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조지의 전기를 쓴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만면의 미소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 조지의 노래나 앨범 이름을 말하곤 했다. 사람들은 그의 음성이나 이름만 들어도 몸 안에서 엔도르핀이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과 연결시켜주는 작용을 하는 것 같은데 이는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산 그의 생애를 생각한다면 실로 역설적인 일이다. 조지하면 사람들은 기쁨을 생각하는데 이를 알면 조지는 매우 행복해 할 것이다. 그런데 조지가 남긴 유산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슬픈 노래들이다. 나는 슬픈 노래들과 우수를 좋아 하기 때문이다.”

-요즘 가수들 중 현대판 조지 마이클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조지가 터놓은 길을 걷고 있는 젊은 동성애자 팝 스타들과 가수이자 작곡가들은 많이 있다. 사람들은 아담 램버트와 샘 스미스를 조지라는 나무의 가지들이라고 부른다. 나는 아담 램버트를 좋아하는데 그는 세계 정상급 가수이자 아주 뛰어난 작곡가이다. 그러나 조지 마이클처럼 대형 공연장을 가득 메울 카리스마가 있는 가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모르겠다고 대답하겠다. 내가 조지를 처음 목격한 것은 2008년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때인데 그가 무대 위로 걸어 나오는 순간 내 머리칼이 거꾸로 솟는 전율을 느꼈었다. 이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지닌 카리스마와 비교할만한 것으로 조지는 노래의 단 한 음도 부르기 전에 공연장을 그의 존재만으로 가득히 메워 놓아 그야말로 황홀무아지경이었다. 또 하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조지는 천부적으로 아름다운 창법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창법이야말로 소리를 보다 좋게 들리게 하기 위해 녹음 스튜디오에서 기술적으로 단장을 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운 것이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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