迷者不問路(미자불문로)
2022-12-15 (목)
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
‘길을 잃어 헤매는 사람이 길을 묻지 않는다’라는 이 말은 곤란한 상황에 닥쳤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조언이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기원전 3~4세기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순자(荀子) 대략(大略) 편 35장에 나온다.
순자는 ‘천하에 나라마다 뛰어난 인재가 있고, 어느 시대건 현명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미혹된 자는 그들에게 길을 묻지 않고 (迷者不問路/미자불문로), 물에 빠진 자가 얕은 지점에 대해 묻지 않으니 (溺者不問遂/익자불문수), 망하는 사람은 독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亡人好獨/망인호독)’라고 말했다.
순자는 시경의 대아(大雅) 판편(板篇)을 인용하면서 ‘옛 어른들 말씀에 나무꾼에게도 물으라 했으니 이는 널리 물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공자가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서 ‘모르면 아래 사람에게라도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不恥下問/불치하문)’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다.
순자의 제자였으며 법가(法家) 사상을 주장한 한비자(韓非子)도 해로(解老) 편에서 ‘많은 사람이 성공하기를 바라면서도 오히려 실패하게 되는 원인은 도리를 알지 못하면서도 굳이 잘 아는 이에게 묻거나 능력 있는 자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사람들은 잘 아는 사람에게 묻거나 의견을 듣지 않아 실패했을 때 성인이 꾸짖으면 도리어 원망하게 된다’고 말했으니 이 모두가 미자불문로를 한탄하는 말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안평중(晏平仲)은 안자춘추(晏子春秋) 내편(內篇)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스스로 위험에 빠진 사람은 구해줄 필요가 없다’라고 까지 말했고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라는 주옥같은 말씀을 남겼다.
예전에 GPS가 없던 시절에는 지도를 보고 낯선 곳을 찾아가야 했다. 그리고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헤맬 때 옆자리의 부인이 ‘차 좀 잠깐 세우고 다른 사람에게 좀 물어봐요’라고 하는데도 자존심 강한 남편이 부인 말을 안 듣고 자기 고집대로 길을 찾으려다 끝내 길을 잃어 부부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 점에서 길 안내를 척척 해주어 길을 잃지 않게 하는 GPS는 가정의 평화를 지켜주는 일등 공신이라 할만하다.
어떤 일을 하다가 일이 잘못되어가는 것을 알면 잠깐 멈추어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해야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일이 잘못된 원인과 고쳐야 할 방법을 스스로 아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식축구 시합에서도 공격의 핵심인 쿼터백은 필드에서 공격과 수비 진형을 평면적으로만 볼 수 있을 뿐이어서 높은 곳에서 게임의 전체 흐름을 입체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감독의 지시를 끊임없이 받아야 제대로 작전을 펼쳐나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공부도 독학만으로는 지식이 편협하게 될 수 있으므로 좋은 스승이 필요하고,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목자(司牧者)가 있어야 한다.
또한 순자는 ‘예(禮)란 사람들이 밟고 나가는 길과 같아서 그 길을 잃으면 잘못은 미세한 듯해도 그로 인한 혼란은 크게 된다’고 하였으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과 행동이 예도(禮道)를 벗어나 길을 잃지 않도록 늘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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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 메릴랜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