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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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시대, 믿음이 살길이다

2022-12-14 (수) 최상석 /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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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지금‘ 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누가, 심지어 전문가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정치계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도 말 바꾸기, 말 뒤집기, 말 먹기(食言), 말꼬리 잡기, 시치미 떼기 등 불신이 다반사가 되다보니 상대방과 대화나 통화를 할 때 녹음을 한다는 사람들도 보게 된다. 씁쓰레 삭막하다.‘불신의 시대’라는 용어가 어느새 오늘의 시대를 규정하는 사회학적 용어로 자리 잡았다.

말이 무너지고 있다. 말은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기호체계이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믿는 가치와 내면세계를 주고받는 상호 신뢰의 교환체계이기도 하다. 믿음을 의미하는 한자 ‘신’信)에서 보듯이 믿음은 말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말에 믿음을 담아 말하는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말에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미사여구나 장광설을 늘어놓아도 교언(巧言)이요, 허언(虛言)이요, 망언(妄言)일 뿐이다.

말이 흔들리면 인간관계도 깨지고 사회도 무너진다. 사회적 불신은 비싼 사회적 대가를 치른다. 사소하게는, 굳이 안 해도 될‘이것 진짜요? 그 말 사실이요? 이 이력서 맞아요?’ 같은 습관적 의심의 말을 하게 된다. 습관적 불신의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내 앞에 마주한 사람을 '믿지 못할' 사람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삭막하고 서글픈 일인가. 사회적 불신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도 이어진다. 사회적 황폐화요, 국가적 손실이다.
물론 사회의 불신이나 ‘믿음의 부재’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신뢰, 믿음의 가치는 동서고금에 걸쳐 늘 강조되어 왔다. ‘논어’에 제자 자공이 정치의 요체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풍족한 양식(足食), 충분한 군비(足兵) 그리고 사회적 믿음(民信)이라 답하는 내용이 나온다.


자공이 부득이 이 셋 가운데 하나를 빼려면 무엇을 빼야 할지를 묻자 군비확충을 버리라 한다. 자공이 다시 나머지 둘 가운데 부득이 하나를 버릴 것을 묻자, 공자는 ‘양식을 버려야 한다. 백성은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고 말한다. 개인과 사회를 떠받치는 사회적 신뢰 곧 믿음을 강조한 말이다.

기독교 역시 ‘믿음’의 소중한 가치를 강조한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칭송되고, 예수께서는 여인과 로마관원의 믿음을 칭찬하셨으며, 바울로 사도는 사람이 의로움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선포했다. 믿음을 말한다. 세상에서 말하는 믿음이나 기독교의 믿음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강조점이 다를 뿐 모두 같은 믿음을 의미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 믿어 줄만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세상, 심지어 나 자신을 믿는 것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 이 불신의 시대에,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을 것인가? 그 길은 참 믿음에 있다. 믿음이 흔들리는 세상일수록 참 믿음을 지켜내야 한다. 믿음은 사변이나 지적논리가 아니다.

믿음은 인생을 거는 것이다. 믿음을 뜻하는 라틴어로 크레도(Credo)가 있다.‘나는 믿는다’는 이 말은 내 심장을 내어 주는 것을 뜻한다. 믿음은 심장 곧 내 존재의 중심을 맡기는 것이다. 믿음은 나 곧 내 존재, 내 인생의 밑동을‘누구 혹은 어떤 것’에 두는 것이다. 믿는 대상에 전적으로 나를 귀의(歸依)하는 것이 믿음이다.
내 인생의 밑동을 자기 자신(Ego)이나 세상 부귀영화에 두고 사는 사람은, 세상 유혹 앞에 늘 요동하기에 아예 믿음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자신이 한 말조차 지켜내지 못한다. 신의와 미더움은 간데없고 수시로 식언 변심 변덕 변절하고 배신에도 거침이 없다. 밑동 없는 삶, 곧 무상(無常)한 세상에 자신의 뿌리를 두고 살기 때문이다.

참 믿음이란 절대자로부터 오는 진리의 영원함에, 사랑의 완전함에, 정의와 평화의 아름다움에, 우주의 모두가 한 몸이라는 깨달음에 내 인생의 뿌리, 나의 밑동을 두고 사는 것이다.
참 믿음에 든 사람만이, 불신의 시대 자신의 말을 지키고, 마음 열어 다른 사람 믿어주고, 세상에서 ‘믿을만한 사람’되어 살아간다. 하늘의 믿음을 알지 못하면 믿음을 줄 수 없다. 인유신립(人有信立)이다. 참 믿음이 우리를 이웃과 더불어 살게 하고, 하느님 앞에 서게 한다.

<최상석 /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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