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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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나 만날까, 그리운 친구여

2022-12-13 (화) 이경애 /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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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못 가본 길! 그래서 나는 미술이나 음악을 전공한 친구를 만나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서이다. 내 삶이 건조하고 감정의 메마름으로 목 마를 때 내 목을 촉촉이 축여주는, 한 모금 생수와 같은 친구.
대학 2학년이 끝나려던 그 해 2월이었다. 그때는 음대가 우리 문리과대학 캠퍼스 별관 강의실을 빌려쓰고 있었다. 도서관을 나와 그쪽을 지나가는데 꽝꽝 내리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3번 영웅(Eroica) 1악장이 막 열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음악실 창문 밖에 멈추어서서 졸업연주 준비를 위해 열정을 쏟고 있는 미지의 피아니스트에게 빠져들었다. 한겨울에도 굽높은 뾰족구두와 나일런 스타킹에 스커트를 입던 그 시대의 여학생이었던 나는 추위로 온 몸을 떨며 그 창밖 얼어붙은 잔디밭 위에 그렇게 서 있었다. 피아노 소리가 멎을 때까지….

세월은 흘러 내 나이 어느덧 70을 향해 급류처럼 날이 빠르게 지나가던 어느날, 피아노과 대학원을 졸업한 친구가 내 앞에 나타났다. 50여년의 긴 기다림 끝에… 내가 은퇴를 하자 나를 HP 커뮤니티 센터로 불러낸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나의 평생소원을 이루어주겠다며 피아노 전공의 Y를 소개해 주었다. Y는 내가 문과를 나왔대서 좋아했고 난 피아노 전공의 그와의 만남에 가슴이 설레었다.


이렇게 만난 우리들은 포토맥 커뮤니티센터 아지트에서 음악얘기로 그리도 싱그러웠던 우리들의 20대 젊은 날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센터를 처음 찾는 이가 들어와 기웃거리면 탁구라켓을 집어던지고 달려가 친절하게 그들을 안내했다.
S. Woolman이 그의 대표시 ‘청춘’에서 노래했듯이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끊임없는 탐구심, 인생에 대한 환희와 흥미”로 가득 차 있었다. 촌분을 아껴쓰는 그는 주변 도서관을 누비고 다니면서 거기 비치된 각종 정기간행물, CD, DVD는 물론, 워싱턴 포스트 지는 비즈니스 섹션까지 샅샅이 뒤져 내가 놓친 아티클이 있으면 복사와 클리핑을 해줘 내 삶에 윤기가 흐르게 해 주었다.

우리는 거의 같은 시기에 은퇴를 해서 수준높은 백그라운드 뮤직에 매료되어 한국드라마를 꽤 보았던 것같다. 그는 ‘천국의 계단’ 첫 신, 바닷가 모래사장에 꿈속에서 들려오는 듯, 아름답고 감미롭게 흐르는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제 1번 2악장의 Largo, Romance가 들어있는 CD를 1회가 끝나자 지체없이 사다 주었고, ‘하늘이시여!’에 나오는 헨델의 ‘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 와 Martini 의 Plaisir d’amour 의 악보를 자기 집 지하실 먼지 쌓인 박스에서 찾아내서 ‘쉬운 피아노곡이니 집에서 연습해 보라’고 복사까지 해 주었다.

그는 또한 일류 요리사였다. 진수성찬 점심에 초대된 나는 그 자리에서 그의 여동생을 만났고 그 인연으로 그분은 나에게 베를린 필하모닉을 Abbado가 지휘하는 베토벤 심포니 1에서 9번까지를 DVD로 만들어 주었다. 아마도 그분은 내가 이 위대한 천재 예술가의 제9교향곡을 들으며 감격해 할 나의 모습에 싱긋 미소를 지으며 기쁜 마음으로 이 어려운 작업을 해 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유유히 함께 저어가던 우정의 돛을 높이 단 우리들의 이 배는 어느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암초에 부딪혀 항해를 멈추고 말았다. 그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은퇴를 하더니 급히 집을 정리하고 그만 시애틀로 훌쩍 이사를 가버린 것이다. 이 충격으로 심신이 창백해진 나는 한국의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실렸다는 그 유명한 조용필의 ‘친구여’를 듣고 또 들으며 날개 부러져 신음하는 새가 되어 버렸다.

그가 그렇게 가버린 그 해 가을, 나는 글로벌 어린이재단(Global Children Foundation) 기금모금 서울바자 행사를 마치고 교보문고에 들러 박종호 저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 2, 3권과 ‘불멸의 오페라’ 1, 2권을 구입해 읽으며 그가 내 곁에 있어 내 삶이 찬란했던 지난날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독백했다, ‘이제 나는 어디서 어떻게 이런 친구를 다시 만나리….’

지난 수년동안, 예고도 없이 순간순간 스며드는 인간적인 외로움으로 내가 마음 아파할 때 내 옆에는 그가 있었고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우정을 내 마음속 깊이 심어주고 그는 떠나갔다. 지금쯤 그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교회 반주자로서의 지고한 자부심을 가슴 가득 안고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임에, 내 그를 위해 2,700마일 떨어진 먼 이곳에서 힘껏 응원해 주련다.

<이경애 /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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