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1970년대 중반 이래 2010년까지 35년간은 대단히 우호적인 관계였다. 소련을 고립시키기 위해 1979년 국교를 체결하고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을 받아들여 대만을 헌신짝 버리듯 내쳐버렸다. 한국 역시 1992년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한 지 30년이 되었다. 미국은 중국의 값싼 소비재 수입으로 저렴한 소비 생활을 향유할 수 있었고 중국은 미국이라는 큰 시장 덕택에 경제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국은 급속도로 경제 성장하는 중국과의 거래를 통해 값싼 노동력과 지리적 접근성으로 물류비용을 절감하며 가장 큰 경제적 이득을 챙겼고, 중국 역시 한·중 경제관계의 확대를 통해 자동차·반도체 공장 유치와 기술 이전을 챙겼다. 미·중관계는 2010년 이전까지, 한·중관계는 2017년 사드 배치 이전까지 사실상의 밀월 관계였다.
일본의 경제력을 제치고 중국이 세계2위 경제대국으로의 부상한 2010년 이후 국제정치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주제는 ‘중국의 부상(Rise of China)’이었다. 중국의 경제력 확대와 군비 증강은 지적재산권 분쟁과 첨단 제조산업에 대한 주도권 쟁탈, 그리고 군사적 패권 경쟁에서 미국과의 보이지 않는 새로운 갈등 상황을 노정하고 있다.
다자간 경제 체제를 뒷받침하는 글로벌 규칙은 처칠과 루즈벨트의 대담한 1941 대서양 회의에서 출발했다. 자유무역의 옹호자이면서 글로벌 국제 분업의 지지자였던 미국이 자국 제조업의 육성을 위해 이른바 산업정책을 시행하고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은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이 주도해왔던 WTO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발효된 ‘반도체와 과학법’이 미국 내 반도체 산업의 진흥과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을 노린 것이라면, 인플레 감축법은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배터리 산업의 발전과 유리한 글로벌 공급망의 구축을 염두에 둔 것이다.
특히, ‘칩(chip)4 반도체 동맹’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 동맹’은 기존 세계 무역 질서의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0세기가 미국과 서방이 중동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위한 싸움으로 특징지어졌다면, 21세기는 미 국이 중국을 글로벌 경쟁자로 보고 전기 자동차 배터리 제조 및 중국 생산 제조 공급에 대한 의존도를 제한하기 위한 무역 분쟁으로 정의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첨단 산업에 필요한 원천 기술과 중요한 광물도 포함된다.
급속하게 팽창해온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세계 전략과 산업 기밀 유출, 전 세계에 넓게 퍼져 있던 공급 망이 코로나19로 인해 각종 리스크에 노출 되면서 편익보다 비용이 더 크게 부각되어 글로벌 가치사슬 기술 동맹, 보호무역으로의 회귀, 경제 블록화라는 새로운 국제질서 개편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또한, 일본이 주장한 중국·러시아·북한의 권위주의체제에 맞서 쿼드(Quad) 확대를 통한 다자간 안보체계 구축과 인도 태평양 전략을 미국이 수용하여 미국 주도로 긴밀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분명히 미·일이 국제사회로 부터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미국이 중국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과학기술 역량과 외교적 네트워크, 그리고 군사적 힘을 통해 중국을 흔드는 것이다. 소련에 대한 고립 전략이 중국에 역으로 재현되고 있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의 속내를 여실히 보여 주는 모습이다. 미국의 일방적인 자국 우선주의는 분명히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지만 미국의 국제 질서 재편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국가간의 분쟁과 미·중 패권을 완화시키고 근본적으로 핵전쟁으 로 치달을 수 있는 최악을 막는 중요한 수단이 분명히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갈등에 빠져 들어간다면 그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이 될 것이다.
갈등은 있지만 아직은 미국과 중국 이 적대적 관계 보다 서로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파국적 충돌은 서로의 이익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한 갈등과 협력이 반복되는 ‘뉴노멀’ 상태로 당분간은 지속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미 안보동맹은 매우 중요하다. 북한의 핵 위협에 자체 방어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도 반도체 산업과 같은 원천 기술을 지닌 미국과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못지 않게 중국과의 관계도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은 앞마당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전략적 동반자라는 노선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력적 관계를 유지한 지금까지는 성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연대할 것임을 공식화 했다. 강대국의 흥망성쇠가 어디로 결정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전환기에 미·중 패권 경쟁이 오늘 내일 당장 끝날 사안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라인 참모들은 친미·일 쪽으로 성급한 도박을 선택해 버렸다. 미국·일본과 협력의 폭과 깊이를 확대하면서도 최소한 중국을 적으로 미리 돌리는 전략은 피했어야 했다. 그동안 피땀 흘려 쌓아온 한국 경제와 안보 환경을 스스로 송두리째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는 실리적 외교·안보의 중대한 실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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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 정치 철학자,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