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이 지나는 다음날부터 크리스마스 무드로 바뀐다. 성미 급한 사람들은 추수감사절 전에 벌써 성탄절 장식들을 꾸민다. 서양은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 계절에는 단연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 연주회가 으뜸으로 꼽히고, 평소에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도 성탄 계절에 헨델의 메시야 연주회는 연례적인 행사로 참여하는 관습들을 지켜오고 있다.
조지 페드릭 헨델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259페이지의 악보를 24일만에 작곡을 마쳤다. 이 메시야 오라토리오는 세기를 초월한 영원한 성곡으로 애창을 받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서울의 모 교회의 전도사로 부름을 받았다. 100여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출석했는데 그 중에서 피아노를 할 수 있는 학생이 한 사람도 없었다.
필자는 올간 밑에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내 손가락에도 영감을 주소서!’ 기도하면서 연습을 거듭 거듭하면서 한 달 만에 찬송가를 4부로 반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에 깨달았다. 나는 할 수 없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감이라면 못할 일이 없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감을 받으면 비범함을 체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헨델은 음악과는 거리가 먼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느닷없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영문을 모르는 부모는 등불을 켜고 지하실부터 3층까지 음악 소리나는 곳을 찾아 다녔는데 다락방에서 7살의 헨델이 건반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 재능을 알아본 외삼촌이 부모 몰래 건반 악기를 선물했는데 헨델이 야심한 밤에 연주하고 있었다.
27살에 독일에서 영국으로 귀화한 헨델은 당대의 음악인들의 선망의 자리였던 왕실의 악장까지 지내게 되었다. 앤 여왕의 후견으로 왕성한 음악활동을 했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심한 경쟁자들의 질투와 모함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공연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재정적인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심한 질병에 사로잡혀 거의 폐인으로 살아가기도 했었다. 헨델은 집념으로 질병에서 놓임을 받고 독일에서 영국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페라 작사자인 촬스 제닌스가 보낸 오라토리오 가사뭉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헨델은 처음엔 그 가사들을 눈 여겨 보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에 흩어진 가사 종이에 눈길이 꽂혔다.
‘그가 징계를 당함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르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내 주는 살아 계시고…’ 그렇지!!! 그래… 바로 이 분이야! 헨델은 자신도 모르게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보냄 받은 이 메시야를 보라! 이 곡은 예수님의 생애를 3부로 나눴다. 1부는 예언과 탄생, 2부는 수난과 속죄, 3부는 부활과 영생의 주제를 담고 있다. 그리고 노래의 가사는 복음서와 이사야서,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 찬양대가 12월 11일 오후 3시에 12회 메시야 연주회를 갖는다. 부분적으로 시작한 연주회는 25년이 되었지만 전곡을 연주하는 것이 열 두 해를 맞는다. 과거엔 목사라도 메시야 연주회에 가면 매번 깊은 졸음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스크린에 주제곡에 맞는 성화와 명화의 배경들이 한글 가사가 함께 뜨기 때문에 졸음에 빠질 여유가 없게 되었다. 금년에는 어린 자녀들을 동반하기 위한 기도가 함께 시작되었다. ‘신앙은 문화를 만들고, 문화도 신앙을 만들어 낸다.’ 불신 문화가 판을 치는 현대 속에서 굳어져 가는 자녀들과 청소년들에게 이제라도 그리스도의 문화로 채색하기 위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현장과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위대하신 메시야를 함께 찬양하는 자리에 모든 이들을 초청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어려운 세대 속에서 거룩한 영에 사로잡힌 헨델이 되어서 하늘 은총 가득한 성탄절을 맞기를 축복해 본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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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열/뉴욕센트럴교회 담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