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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기쁨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것이 가장 중요”

2022-12-02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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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버니 킹의 정의’의 호주 배우 에시 데이비스

“끊임없이 기쁨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것이 가장 중요”

‘버니 킹의 정의’의 호주 배우 에시 데이비스

뉴질랜드 영화‘버니 킹의 정의’(The Justice of Bunny King)에서 위탁가정에 맡겨진 자신의 두 아이를 되찾기 위해 길에서 차의 유리창을 닦아 주면서 푼돈을 버는 어머니 버니 킹으로 나와 맹렬한 연기를 보여준 호주 배우 에시 데이비스(Essie Davis·52)를 영상 인터뷰 했다. 버니는 집을 나온 질녀 토냐 까지 맡아 돌보게 되면서 고된 삶을 사나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긍정적인 여자다. 호주 남단의 섬 타스마니아의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데이비스는 활발한 두 손 제스처와 함께 연기 하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밝고 명랑한 태도로 질문에 대답했다.

“끊임없이 기쁨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것이 가장 중요”

영화 ‘버니 킹의 정의’ 의 한장면.



-버니는 사회 변두리의 사람이면서도 긍정적이요 낙천적이며 또 유머마저 지녔는데 처음부터 각본에 그런 인물로 되어 있었는가 아니면 당신이 연기를 하면서 그런 특성들을 개발했는가.


“처음 내게 보내온 각본에 버니가 긍정적이요 삶의 기쁨을 아는 여자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여자로 묘사됐기에 난 ‘분명히 이 역을 내가 맡겠다’고 말했다. 버니의 그런 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문제가 있으면 그 것을 풀어나갈 줄 아는 사람이며 고생 중에 질녀까지 맡아 돌보면서도 꿋꿋이 삶을 사는 여자다. 이렇게 첫 각본에서는 버니가 희망적인 사람으로 묘사됐는데 막상 내가 영화를 찍기 위해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는 각본이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쳐 버니가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어둡고 의기소침하며 기쁨을 모르는 여자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나는‘이 내용은 내가 출연계약을 맺었을 때와 전연 다른 것으로 난 이런 영화에 나오려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감독인 그레이손 타바트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레이손과 함께 각본의 첫 부분부터 다시 손질해 희망이 있는 내용으로 고쳤다. 관객이 보면서‘그래 버니야 너는 해낼 수 있어’라고 응원할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끊임없이 기쁨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버니야 말로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토냐 역을 맡은 토마신 맥켄지와는 호흡이 잘 맞았는지.

“버니는 의붓아버지로부터 성적 추행을 당해 집을 뛰쳐나온 10대의 토냐를 돌보면서 주눅이 든 이 아이에게 일어서 자기 소리를 낼 줄 아는 힘을 심어준다. 토마신은 매우 직선적이요 단순하면서 즐거운 사람으로 그와 함께 영화를 찍은 경험은 아주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런데 토마신과 나는 ‘켈리 갱의 실제 역사’라는 영화에서 전에도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우린 구면인지라 함께 풍선을 불고 야단스레 노래도 하고 머리도 부닥치면서 신나게 즐겼다. 버니가 토냐를 돌보면서 둘이 강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게 되듯이 나와 토마신도 그런 관계를 유지했다.”

-사람들이 버니를 결점과 흠이 많은 여자로 볼 것에 대해 염려라도 되지 않는가.

“우리는 다 결점과 흠이 있으면서도 그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버니가 결점과 흠이 있어 더욱 그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는 가진 것이 두 아이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으로 이로 인해 당연히 좌절감에 빠지고 또 분노하다보니 결점과 흠을 지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버니는 두 아이를 위험에서 구해내기 위해 감옥에까지 들어간 사람이다. 우린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보고 그 즉시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 아이를 위탁가정에 두게 된 어머니를 보면 대뜸 ‘야, 저 여자가 뭘 잘못했지’라고 말하게 된다.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영화가 사람들이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촉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버니는 위기에 처할 때 뛰어난 말재주로 그에 대처하는데 당신의 경우는 어떤지.

“난 때로 위기나 도전에 직면했을 때 그에 대해 말로 제대로 대처하질 못한다. 어떤 상황과 어떤 사람으로부터 자기를 말로 보호해야 하는지 매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난 때로 그런 경우에 처하면 그냥 소리를 지르는 것이 최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말 재주가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게 마련으로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 중의 하나다.”


-맡은 역에 몰두해 촬영이 끝나고도 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아니면 쉽게 벗어나는가.

“나는 일 할 때면 그 것에 완전히 나의 영육을 몰입시킨다. 그렇지 못하면 내 작은 자의식이 내게 ‘쳐다만 보지 말고 빠져들어’라고 독려하곤 한다. 역에 함몰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일단 맡은 역을 하고나서 그 것에서 벗어나기에는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여러 가지 역을 연기하다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마련으로 그 것은 최대한으로 솔직하고 진실해야만 한다. 내가 한 연기가 사실감이 없고 또 믿을 수가 없다면 감독의 ‘컷’이라는 말은 아무 가치가 없다. 오케이 정도로는 안 된다. 나는 연기에 관해서는 다소 완벽주의자이다. 연기란 살아 있는 유기체로 몸 안으로 액체처럼 흘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지치곤 하지만 나는 그런 피곤에서 벗어날 줄 안다. 그러나 때로는 맡은 역이 촬영 후에도 나를 떠나지 않고 내 실제 삶에 약간의 상처를 남기면서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여러 성질과 형태의 사람들을 연기하면서 그 같은 경험이 내가 그 때까지 지니고 있던 내 영혼과 과감한 도전 정신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주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여러 장르의 영화에서 다양한 역을 맡았는데 당신이 나온 영화들과 역에 어떤 공통점이라도 있는지.

“나는 영화마다 내가 맡은 역이 과거와 다른 새로운 인물이 되는 것을 진실로 좋아한다. 같은 성질의 역을 맡아 날 지루하게 만들고 싶질 않다. 거울을 보면서 거기서 보는 내가 새로 맡을 역이 과거의 그 것들과 다르지 않다면 ‘이건 반복에 지나지 않는 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고 말하게 된다. 따라서 내가 맡은 역은 모두 다 매번 전에 것과 달라야 한다는 것은 내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 것은 내 개인적인 기쁨이요 또한 도전이다. 그 것은 창조적 과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팬들이 나를 보고 다양한 역이 아니라 어느 한 역의 배우라고만 생각하게 된다면 실로 좌절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 영화와 함께 다른 영화들에서 보여준 당신의 연기에 대해 비평가들의 칭찬이 자자한데 배우 생활을 시작할 때 지금의 위치에 이를 줄로 생각했는가.

“내가 아주 어려서 달에 가고 싶고 유명한 댄서이자 배우인 프레드 애스테어 같이 되고 싶고 세계사에 남을 위대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와 지금의 나의 위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금의 내 위치와 내가 한 역들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에 대해서 무한히 감사한다. 어른이 되어 내가 한 역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으며 또 그로 인해 나는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역들을 해내면서 나 자신이 풍요로워졌으며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백만 개 이상의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웃고 울게 만드는 영화 그리고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바른 소리를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난 참으로 운이 좋다고 느낀다. 내 정신을 혼미케 만들 수 있는 감독들이 100명은 되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도 많다. 내가 그런 사람들 과 함께 있고 또 그들과 함께 일하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만 해도 나에겐 큰 영광이다.”

-자라면서 위탁가정에서 사는 아이들을 보고 사귄 적이 있는지.

“그런 아이들을 직접 만난 경우는 없다. 난 자라면서 저소득층과 노동자층의 자녀들이 많은 학교를 다녔는데 그런 집 아이들 중에서 집에서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어떤 아이들은 아주 질이 나쁜 불량아들이 돼 남을 못살게 굴곤 했다. 나도 두 명의 그런 아이들로부터 무척 괴로운 시달림을 받았다. 이 영화는 아이들을 반드시 키워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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