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페이블맨 가족’(THe Fabelmans) ★★★★ (5개 만점)
▶ 스필버그의 반 자전적인 삶 다뤄…가족에 대한 사랑 듬뿍 담아 서술
부모와 함께 생전 처음 영화 구경을 온 새미가 입을 벌린채 눈을 크게 뜨고 영화의 마법에 취해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린 시절부터 영화계에 입문하기까지의 다사다난한 삶을 다룬 반 자전적 영화로 소년의 성장기이자 영화라는 마법이 어떻게 한 인간을 형성하고 또 변화시키는가 하는 얘기를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린 재미있는 영화다. 스필버그는 이 같은 자기 성장의 얘기만큼이나 큰 비중을 두고 자기 가족(특히 부모)의 얘기를 자상하게 다루고 있는데 영화에 대한 애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아 서술하고 있다.
그가 가슴을 다 해 과거를 회상하면서 들려주고 보여주는 얘기가 때로 우습고 또 때론 비감하기도 한데 감정과 감상성이 흥건히 고여 있어 보고 있노라면 다소 처지는 느낌이 든다. 잘 만든 영화이긴 하나 지나간 것은 추하고 두렵고 어려웠던 것들 마저 아름답다는 듯이 모든 것을 너무 미화해 다소 지나치게 단맛이 난다. 에피소드 식으로 묘사되는 얘기의 서술이 극적 강렬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도 또 다른 결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충분히 즐길만한 작품이다.
우린 누구나 다 처음으로 자기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긴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가 우리에게 남긴 마법적 후유증도 아울러 기억할 것이다. 필자도 중학생 때 본 흑백영화로 진주만 피습 사건 전후의 하와이주둔 미군들의 우정과 의리와 사랑을 그린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보고 영화광이 되었다.
뉴저지에 사는 새미 페이블맨(꼬마 역 마테오 프랜시스-디포드 그 후 새미에 게이브렐 라벨)도 1952년 여섯 살 때 부모와 함께 본 세실 B. 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를 보고나서 영화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새미는 아버지가 선물로 준 홈 무비 카메라로 영화의 기차탈선 장면을 장난감 기차로 재연해 찍으면서 아마추어 감독(?)으로 데뷔한다. 새미는 또 세 명의 자기 여동생을 미라로 분장시켜 공포영화를 만들면서 감독 수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 만들기에 집착하는 새미를 전기전문 엔지니어인 아버지 버트(폴 데이노)는 취미로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지만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아이들 양육을 위해 꿈을 접은 자유혼을 지닌 감수성 예민한 어머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아들의 꿈을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새미는 영화 만들기를 계속하면서 보이 스카웃 동료들을 동원해 웨스턴을 만들고 또 학교 급우들을 사용해 2차 대전 영화도 만든다. 그런데 새미는 원체 총명하고 독창적이어서 혼자서 영화를 쓰고 찍고 또 편집까지 한다.
뉴저지에서 애리조나 피닉스로 버트의 새 직장 때문에 새미 가족이 이사를 할 때 함께 따라오는 사람이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베니(세스 로간). 이 베니로 인해 버트와 미치 간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새미는 가족과 베니가 함께 간 캠핑서 찍은 필름에서 어머니와 베니가 은밀한 접촉을 하는 것을 발견하고 고민한다.
그 동안 다소 느리고 잔잔하게 진행되던 영화가 새미가족이 다시 북가주로 이사 오면서 힘을 얻는다. 부모의 관계가 시들어가는 것으로 인해 고민하는 새미에게 있어 이보다 더 큰 고민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학교에서 당하는 횡포다. 특히 덩지가 큰 로간(샘 래크너)은 새미에게 폭력마저 휘둘러 죽을 맛인데 그런 가운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모니카(클로이 이스트)의 적극적 구애에 이끌려 달콤한 첫 로맨스를 경험하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영화는 새미가 유대인이어서 당하는 모욕과 폭행 등을 매우 노골적이요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런데 새미가 고교 졸업기념 작품으로 찍은 필름을 보고나서 로간이 회개하는 모습은 잘 납득이 안 된다.
영화는 새미가 대학을 중퇴하고 CBS-TV에 견습생으로 입사하면서 끝나는데 마지막에 새미와 거장 존 포드가 만나는 장면이 재미있다. 신인인 라벨을 비롯해 연기들이 다 좋은데 특히 윌리엄스가 섬세하고 민감한 연기를 한다. 그리고 단역인 새미의 외할아버지로 나오는 저드 허쉬가 눈에 띠는 연기를 한다. 스필버그 영화의 단골 작곡가 존 윌리엄스의 음악도 좋다. 관람등급 PG-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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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